책의 정신
책의 정신
  • 김주희<청주수곡중 교사>
  • 승인 2015.11.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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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학교도서관 담당자를 대상으로 도교육청에서 주관한 독서교육 연수가 있었다. 이 연수에서 ‘책의 정신’의 저자 강창래 작가를 만났다. 강 작가는 ‘책의 정신’을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을 읽을 때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책지도’로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이 책의 부제는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아니라 당시 계몽 사상가들이 쓴 연애소설이나 포르노 소설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로버트 단턴이라는 학자가 혁명 전 프랑스 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혁명을 전후해 2쇄를 찍어냈지만, 역시 루소가 지은 연애 소설 ‘신 엘로이즈’는 1761년에 출간돼 40년 동안 115쇄를 찍었다. 당시 문맹률을 감안할 때 엄청난 판매량이다.

가난한 평민 출신인 생프뢰와 귀족의 외동딸 쥘리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그린 이 연애소설을 읽으며 프랑스인들은 애초부터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여기던 귀족과 평민의 구분을 희석시켰고,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과 이성을 가진 ‘같은 존재’로 보게 되었다.

이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평등이라는 낱말에 깊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지식인층에서 유행하던 ‘사회계약론’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진격해 왕과 왕비를 끌어낸 파리의 생선 장수가 접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 하나는 플라톤이 저술한‘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대한 평가다. 우리는 흔히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에 맞서다가 말도 안되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혐오했고 전체주의 국가였던 스파르타를 선망했다. 실제로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는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였던 아테네에 독재정권을 세우고 민주주의자들을 살육했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사람은 그 독재 정권 치하에서 핍박받던 민주투사였다.

고전에 대한 이런 다른 해석 역시 기존 해석과 마찬가지로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긴 시간을 버텨온 고전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마다 주류 이데올로기를 가진 편집자의 의도에 맞게 적당히 변형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일 수도 있다. 통치 세력의 지배 이념을 민중들에게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자인 소크라테스는 널리 알려졌지만 민주주의자인 페리클레스나 솔론에 대해서는 거의 들은 바가 없다. 마찬가지로 엘리트주의자인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평화주의자이며 하층민의 대변자였던 묵자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

지배층 입맛에 맞는 고전에 대한 쏠림 현상은 좋은 저작물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솔론이나 페리클레스, 묵자에 관한 좋은 책은 독자 수요가 적어 출판하지 않는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책들이 많다. 5000만 인구가 사는 나라에서 몇 백 권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건 대단히 세련된 금서정책이 아니겠는가?

고전 열풍이 불고 있다. 어떤 단체에서는 학교도서관 소장 금지 목록을 만들어 이를 홍보하고 도서관 수서 활동에 압박을 가하려 한다. 그리고 학교도서관 구입 도서 목록을 제출하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책의 정신’을 읽으며 시대에 역행하는 이러한 요구들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여유가 생겼다. 금서 지정에 가까운 그런 활동들은 인기가 전혀 없는 그 책들을 책의 감옥에서 풀어주는 열쇠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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