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더라 방송
카더라 방송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5.11.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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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발 없는 말은 천리까지만 가는데, 발 없는 문자는 지구를 몇 바퀴나 돌고도 남는다. 내용이 부정적일 수록 미미했던 처음과는 달리 옮겨질 때마다 보태져 엄청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 잘 써 먹는 네거티브 전에도 이 ‘카더라 방송’을 이용하는 걸 보면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간다. 작년부터 한국 포도도 이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발단은 한 귀농인이 어떤 강의를 수강한 후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씨 없는 포도를 재배할 때는 식물호르몬 지베레린을 처리하는데 이것을 살충제에 담근다며 허위 사실을 퍼트린 것이다. 게다가 이 포도를 성장기의 아이가 먹으면 성 조숙증이 온다는 근거 없는 문장을 곁들여 일파만파 일이 커졌다. 대체 지베레린이 어떤 물질이기에 그렇게 말한 걸까? 그 말이 진실일까?

명백하고 단호하게 말하건대 이 물질은 인체에 이로울 것도 없지만 해로울 것도 없다. 이 물질은 식물에만 영향을 주며, 동물에게는 영향을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물은 자신의 몸 가장 어린잎에 다량 함유된 지베레린의 힘으로 자란다. 농사에 이용하는 지베레린도 바로 이 어린잎에서 채취한 것이다. 어른 잎새가 크기를 멈춘 것은 지베레린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농사과정에서 처리한 지베레린은 식물에게 조차도 일정 기간 후에는 그 물질이 소멸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수확기의 포도나 배 등에는 지베레렌이 제로이다. 연구실의 연구원도 아닌 내가 어떻게 그것을 호언장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농사꾼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과일 속에 지베레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과일은 익기를 거부하고 계속 굵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통되는 과일 중에 비대기의 과일은 단 한 알도 없지 않던가. 이미 소멸된 물질이 어떻게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지…. 혹여 지베레린이 잔재한다 치자.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나물 반찬을 먹을 때 우리는 왜 연한 나물을 선호하는가. 김치거리를 살 때도 우리는 되도록 지베레린이 많은 어리고 연한 잎을 골라 시장을 보지 않던가.

한국포도회는 문제의 강의를 한 강사를 찾아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나 듣고 보니 그분도 농민 못지않은 피해자였다. 자신은 결코 그런 내용의 강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지베레린의 성격을 정확히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초 유포자는 허위사실을 올리면서 그분의 출신대학, 경력, 직장 등도 공개해 누구든지 진실이라고 믿게 했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한국포도회는 포털사이트에 관련 글의 게시 중단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손 놓고 있는 것이 대책이었다. 네거티브전에는 무대응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카더라 방송’의 전파는 끈질기기가 쇠심줄 보다 더해 아직도 확산되고 있다. 하여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전 세계 그 어떤 기관이나 학자도 지베레린이 인체에 유해하다고 발표한 연구기록이나 논문이 아직 없다. 당연히 외국 포도원도 지베레린 처리 농법으로 농사지으며 씨 없는 수입포도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현명한 우리 국민이 이 허황된 낭설에 더는 흔들리지 말기를, 근거 없는 ‘카더라 방송’도 퍼 나르지 말기를, 수입과일 때문에 우는 농민의 눈물을 이제는 닦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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