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맞았던 새벽은 여전한가
YS가 맞았던 새벽은 여전한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11.22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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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22일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만큼 평가에서 명암이 확연한 정치인도 드물다. 누군가를 놓고 공과를 논해야 할 경우 가장 전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이다. 취임 초 누렸던 지지율 90%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제를 도입하고 검은돈 차단을 위한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하며 개혁의 교과서를 만들어간 결과였다. 군부의 거센 반발을 떨치고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함으로써 정치군인들을 일거에 정리했다. 12·12 군사쿠데타의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했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바로잡은 보기 드문 장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민주화를 넘어 선진적 산업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도 제시했다.

과실도 만만찮다. 3당 합당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 정국을 정파적 담합으로 뒤집은 퇴행적 정치로 꼽힌다.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나라를 IMF 식민지로 전락시킨 것도 그에게 따라붙는 치욕스러운 꼬리표다. 국정농단 비난을 받던 아들은 비리에 연루돼 감옥에 들어갔다. 정권 후반기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며 정국을 혼란으로 몰아간 것도 그에겐 어두운 그림자다.

그러나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만큼은 그에게서 흠을 잡기 어렵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가 남긴 유명한 외침이 상징하듯 독재정권과의 투쟁에서 그는 늘 싸움닭을 방불했다. 목이 비틀려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소신과 뚝심의 지도자였다. 연금과 단식은 일상사가 됐고 초산으로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외유나 추방설이 나돌면 “나를 죽여 시체를 내보내면 될 것이다”며 맞섰다.

‘새벽이 온다’는 말은 1979년 터진 이른바 ‘YH 사태’때 그가 한 말이다. 이 사건은 ‘YH무역’이라는 회사의 여성 근로자 200여명이 회사의 폐업과 정리해고에 맞서 당시 야당인 신민당사로 몰려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근로자들의 퇴거를 요구하며 강제 진압을 경고했지만 당시 총재였던 김영삼은 요지부동이었다. 급기야 방패와 몽둥이로 무장한 경찰이 당사에 난입해 근로자들을 강제 연행하는 과정에서 김영삼은 멱살을 잡힌 채 끌려나왔고 근로자 1명이 숨졌다. 이를 민주주의를 유린한 폭거로 규정한 그와 야당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장기 농성을 펼쳤다. 그는 이 사건의 여파로 국회에서 제명됐다. 뉴욕 타임스와의 기자회견이 결정적 빌미가 됐다. 김영삼은 인터뷰에서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제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상군 3만명을 한국에 주둔시킨 미국이 내정간섭 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압박했다.

당시 YH 문제로 미국과 갈등하던 청와대는 분노했고, 여당인 공화당은 ‘사대주의적 발상으로 외세를 내정에 끌어들이려는 매국행위’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은 단독으로 김영삼 징계안을 제출했다. 그리고는 소속의원 159명을 별실로 몰래 불러모아 국회 본회의를 열어 159명 전원 찬성으로 제명안을 가결했다. 이 미증유의 사건은 김영삼에게는 시련이었지만 유신의 종말을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보도를 통해 김영삼을 지지했던 뉴욕 타임스가 그제는 우리 정치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한국 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는 제목의 이 사설은 “북한의 꼭두각시 체제와 한국을 차별하던 민주주의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켜려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적 자유가 산업화에 방해물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던 시기를 미화하는 역사를 가르치게 하려고 한다”며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복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펼쳤다.

우리 정국에 대한 냉철한 진단인지, 어줍잖은 내정간섭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타계 직전에 나온 뉴욕 타임스의 사설은 민주주의 구현에 무한 헌신했던 그를 보내는 사람들을 더 우울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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