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호불호
아내의 호불호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11.1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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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며칠 전 오찬을 함께하던 지인이 사모님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묻더군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무슨 음식이라고 선뜻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식보다는 양식을, 양식보다는 한식을 좋아한다는 것과 요즘은 소화가 안 된다며 밀가루 음식을 멀리한다는 정도만 알 뿐 아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뭔지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비린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끼니마다 고등어 꽁치 갈치 반토막이라도 식탁에 올리려 했고, 술 마시고 들어오면 해장국 끓여주고, 기력이 쇠해지면 밤새 곰국을 끓여 먹이던 아내였습니다. 그런 아내와 30년이 넘도록 함께 살았는데 여태껏 남편 위주의 삶을 살아준 고마운 아내인데 남편은 정작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호수의 파문처럼 번져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모르는 게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게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해서 부부가 되었고, 자식 놓고 함께 키워 장가를 보내고, 어느새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아내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참으로 신비한 존재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모르는 게 여자의 마음입니다. 아내도 그런 여자입니다. 자식 앞에선 한없이 강한 모성이지만 가는 세월은 어찌할 수 없어 머리숱도 빠지고 눈가에 잔주름도 늘어났지만 손녀 앞에선 동심으로 돌아가는 영락없는 소녀랍니다.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고뇌를 내색하지 않고 사는지라 아내의 아픔과 아내의 고뇌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 속속들이는 잘 모릅니다.

아내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놀러가자고 하면 아파도 반색을 하며 따라 나섭니다. 주부의 일상에서 벗어나 명승지를 구경하고 그곳 특산음식을 즐길 수 있어 그러겠지 짐작은 하나 여행을 좋아하는 진짜 속내는 잘 모릅니다. 아내도 분명 값비싼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고 명품가방을 들고 명품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을 겁니다. 그렇게 해달라고 조르거나 불평한 적도 없지만 능력이 딸려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아내의 취미와 특기도 실은 잘 모릅니다. 등산도 마다않고 영화감상도 마다하지 않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아내도 분명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비겁하게도 자신의 꿈은 키워가면서 아내의 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건강하고 무탈하게 살기만을 바랐습니다.

이제 세상의 남편들은 내팽개친 아내의 꿈을 찾아 주어야 합니다. 설사 그 꿈을 이루기엔 너무 늦었다 할지라도 화가의 꿈이 있었다면 그림을 그리게 하고, 가수의 꿈이 있었다면 노래를 부르게 해야 합니다. 70세에 시집을 낸 할머니도, 전시회를 연 할머니도 있습니다. 아니 아마추어 화가면 어떻고 나 홀로 가수면 어떻습니까.

오늘 밤 당신의 아내에게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냐고 나직이 물어보세요. 꿈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아내의 꿈을 찾아주는 남편이 최고의 남편입니다. 아내도 인간인지라 단점도 있고 결점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 단점과 결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설마 아내의 장점도 모른다 하지는 않겠지요? 살던 집이 불타 아내는 눈을 잃었고 화상을 입은 남편은 얼굴이 괴물처럼 변했습니다. 아내는 잠든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어 알고 있었지만 늘 남편의 멋진 미소가 보고 싶다고 속삭였습니다.

남편은 흉측하게 변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죽음이 임박해서야 아내에게 각막을 주고 떠났습니다. 시력을 찾은 아내가 남편이 남긴 편지를 읽고 오열하는 슬픈 부부의 이야기가 문뜩 뇌리를 스칩니다. 당신은 아내의 호불호(好不好)를 얼마나 아십니까?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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