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 쌍계루
백양사 쌍계루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1.16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시재(詩才)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경이롭게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온전히 읊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입이 딱 벌어지도록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감탄사만 연발할 뿐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표현을 하고 싶지만 이미 할 말을 잊었다(欲辯已忘言)고 한 도연명(陶淵明)의 말이 결코 겸사(謙辭)가 아닌 것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늦가을엔 어디를 가든 절경(絶景)이요 승경(勝景)이지만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빼어난 경치가 있게 마련이니 전라남도 장성군에 소재한 백양사(白羊寺) 쌍계루(雙溪樓)의 늦가을 정경이 바로 그것이다. 고려(高麗)의 시인 정몽주(鄭夢周)도 이 기막힌 절경(絶景)에 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쌍계루(雙溪樓)



煙光渺暮山紫(연광표묘모산자) 안개 드리운 햇빛 아득하고

해 저문 산은 자줏빛인데

月影徘徊秋水澄(월영배회추수징) 달그림자 서성이어 가을 물은 맑구나

久向人間煩熱惱(구향인간번열뇌) 오래도록 사람 세상 번민 속에 갇혔으니

拂衣何日共君登(불의하일공군등) 어느 날 옷깃 떨치고 그대와 함께 오르리



시인이 어느 날 백양사 쌍계루를 찾았더니 그 곳 스님이 시 한 수를 칭하였다.

마침 계절은 늦가을이라 주변은 온통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있었고 쌍계루 앞을 흐르는 시내는 맑고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시 한 수가 저절로 떠올려질 법한 정경이지만 시라는 것이 막상 지으려고 하면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 짓기를 거절하기도 어렵고 해서 고심 끝에 붓을 들었다. 먼저 시인의 눈이 간 곳은 물 위였다. 물안개와 가을 햇빛이 섞여 지척의 거리지만 아득히 먼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개 돌려 뒷산을 보니 저녁인지라 석양빛이 낮게 드리워져 산이 자줏빛으로 보였다. 쌍계루 주변의 늦가을 저녁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신비로움이다. 신비로움에 취해 있다 보니 어느새 쌍계루에 밤이 들고 하늘에 밝은 달이 떠올랐다.

초저녁에 시내 위로 보이던 물안개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물 안으로 늦가을 밤의 진객(珍客)이 찾아와 있었다. 하늘에 뜬 달보다 더 선명한 달 그림자였던 것이다. 맑은 가을 물은 웬만한 거울보다 나은 법이다. 맑디맑은 가을 물에 밝디밝은 가을 달은 환상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초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쌍계루의 환상적인 정경에 젖다보니 문득 아등바등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돈과 명예에 대한 집착에 빠진 삶은 그야말로 번뇌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옷깃에 달라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 듯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번뇌를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벗과 함께 쌍계루에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광을 접하게 되면 흔히 시를 떠올리지만 막상 그것을 시로 쓰려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운치도 없고 실제로 잘 되지도 않는다. 이럴 때 에둘러 비유를 통해 묘사하는 것이 상당히 효과가 있다. 이렇게 시로 쓰게 되면 아름다운 풍광은 단순히 눈의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는다.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키는 작용이 더 큰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