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가을비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11.1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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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효순 <수필가>

며칠 동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지난주 문학 기행을 철원으로 갔을 때 그날 밤에도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렸다. 그날 내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50년 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빗소리와 함께 그 친구와 긴 밤을 속삭이며 정겨운 옛 시절로 잠시 돌아갔다.

철원을 향해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였다. 악기를 메고 타는 중년 신사와 우리 또래의 여인이 함께 동승했다. 행사 때 연주하실 분들이란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그들이 예술인처럼 보였다.

흥이 있는 회원들은 노래를 부르고 난센스 퀴즈도 맞히며 관광버스 안의 분위기는 점점 익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주고받으며 가는데 가수 겸 연주자인 까만 옷을 입은 여인의 차례가 되었다. 성악을 공부했다는 그 여인은 아주 노래를 잘 불렀다. 나이에 비해 목소리도 젊었다. 자기소개를 하는 그 모습이 우리 중학교 때 동창 같았다. 나이가 들어 그때처럼 날렵하진 않았다. 목소리와 웃을 때 들어가는 볼우물, 꼭 옆반에서 반장이었던 친구 같았다. 그러나 이름 끝 자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숙소에 가면 꼭 알아보려고 마음에 두었다.

아침 고요수목원과 산정호수를 지나 철원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인솔자가 방을 함께 쓸 팀을 알려 주었다. 마침 그 여인이 우리와 한팀이 됐다.

배정된 방에 도착하자마자 궁금하던 것을 먼저 알아보았다. 예상한 대로 적중했다. 원래 끝 이름이 잘못되었던 것을 바로잡았다고 하며 맞는다고 했다. 마치 이산가족이 만나 서로 묻고 찾는 것과 같은 거였다. 우린 반가워서 얼싸안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너무 기뻐 감정 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있을까. 죄 짓고는 못 산다는 말까지 했다.

저녁식사 후 식당에서 간단한 오락회가 있었다. 온통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도시답게 식당 안은 오래 지나 낡은 것들이 식당 벽을 울타리처럼 메우고 있다. 찌그러진 주전자. 군인들이 쓰던 수통, 어수선한 모습 속에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그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친구와 동행한 지인과 함께 ‘에델바이스’ 트럼펫 연주로 시작된 철원의 가을밤은 간간이 들리는 낙숫물 소리와 함께 더 정겨웠다.

친구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 50년 만에 만난 날 소개했다. 덕분에 눈인사도 많이 받았다.

협회의 행사가 끝나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철원의 스산한 가을 빗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얼마나 긴 세월이었나. 삶의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아들 둘을 잘 키우고 친구도 목표한 것을 이루며 취미생활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은 마음에 담긴 것들을 수필을 통해 한번 풀어보고 싶어서 그동안 공부하여 지난 3월 수필가로 등단하여 우리 협회의 동인이 되었단다. 그래서 회원 자격으로 왔다고 했다. 이런 인연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놀랍다는 생각만 들었다. 단발머리 소녀들이 눈가에 주름 잡힌 황혼으로 가는 길에 만나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여 지난 3월호 문예지를 펼쳐 보았다. 친구의 이름이 적힌 신인상 명단을 보고 사진을 본다. 그때 읽을 때는 청주 무심천과 진천 농다리가 작품 중에 나와 청주 사람인가 하고 의아했는데 그때도 이름이 달라 그냥 스치는 정도로 읽었다. 다시 정독을 하니 친구의 옛 시절 모습이 가득 담겼다. 환하게 웃는 사진도 더 선명했다

가을비는 낙엽을 떨구고 있는데 내겐 소중한 친구를 보내 주었다. 여전히 가을비는 멈춤없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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