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생각
연탄 생각
  • 최준 <시인>
  • 승인 2015.11.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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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몇년 전 호숫가 외딴집에서 기거할 때 동절기의 실내에 연탄난로를 들여놓고 지냈던 적이 있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 돌아오면 난로불이 꺼져 있기 일쑤였다. 차갑게 식은 연탄재를 정리하고 불을 다시 지피느라 고생하곤 했으나 안온한 겨울 적요는 세속의 것이 아니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헉헉거리던 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어느새 겨울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두어 차례 가을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엔 또 다른 고민이 끼어 있다. 피할 수 없는 겨울나기다. 겨울이 있는 나라와 겨울이 없는 나라는 살이의 방식이 전혀 다르다. 겨울이 있는 나라에서는 집을 지을 때 제일 고민해야 하는 게 바로 난방이다. 살기 좋은 집이라는 건 곧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집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겨울을 걱정하지 않고 사는 삶은 넉넉한 삶이다. 춥지 않게 사는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시절 따라 생활환경도 바뀌고 채난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기억이 난다. 앞뒤 산에서 해온 나무를 마당 가에 쌓아 놓고 그 나무로 겨울을 나던 시골에서의 유년 시절이 있었고, 연탄불로 겨울을 나던 청소년기가 있었고, 기름보일러로 겨울을 나던 도시에서의 청장년 시절이 있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가 겨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도 보았다.

겨울을 나려고 나무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고 연탄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고 기름 탱크에 기름을 채워 넣는 이들이 있다. 나무는 다소 낭만적인 느낌이 들고 기름은 도시적인 냄새가 난다. 하지만 연탄은 예나 지금이나 왠지 모르게 가난을 연상하게 한다. 거기에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어렵고 추운 겨울나기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 있다.

연탄이 소중한 채난 연료였을 때 강원도 정선과 태백은 최대의 무연탄 산지였다. 이른바 탄광촌이라고 불린 그곳들은 길도 산도 지붕도 냇물도 온통 검은색이었다. 탄광촌에서 사는 아이들의 크레파스는 검은색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과장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갱도가 무너져 내려 애먼 광부들이 매몰되는 사고 소식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연탄가스라 불리는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었다. 한 시대의 아픔이었다고 하겠지만 이 아픔은 양태만 다를 뿐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누군들 겨울을 춥게 보내고 싶겠는가. 더우면 덥지 않게, 추우면 춥지 않게 보내려는 건 본능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나눌 수 있는 게 있고 나눌 수 없는 게 있다. 나누어야 할 게 있고 나누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이것들이 분별을 이루어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관계망을 형성할 때 우리 사회는 인간적인 온기로 따스해지지 않을까. 나만 춥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의식은 추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들 뿐이다.

사랑의 연탄 나누기 운동이 해마다 지속하여 오고 있다. 어려운 이들의 겨울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는 따스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거기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삶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정직하게 열심히 삶을 살고, 아끼고 아껴서 십시일반으로 이웃을 도우려는 아름다운 분들이 주변에 있다. 정작 많이 가지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는데 사랑의 연탄을 나누는 이분들의 마음속에는 연탄 난로 불이 지펴져 있다.

오는 겨울을 혹독하고 길게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겨울을 따스하게 해 줄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마음으로 빌어준다고 해서 이들의 겨울이 따스해질까. 그리고 이런 질문은 대체 누구에게 해야 할까. 시원스러운 답을 내줄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 그런 이가 있기나 있는 걸까. 혹시나 하고 높은 데를 기웃거리지만 눈 씻고 다시 보아도 그런 이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차갑고 허허한 초겨울의 허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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