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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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2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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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와 생쥐
윤 광 희 <한국수자원공사 충주권관리단장>

캄캄한 밤중 숲속의 나무 아래서 생쥐 한 마리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올빼미 한 마리가 생쥐에게 큰 소리로 "생쥐 네 이놈! 왜 이리 소란스럽게 구느냐"하고 소리치자 생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캄캄한 밤중에 내가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볼 수가 있지 저건 필시 보통 동물들과는 다른 동물임에 틀림이 없어 아마 신과 같은 존재일거야. 저런 분이 우리 동물의 왕이 된다면 우린 편히 살 수 있을 거야. 바로 저런 분이 우리 동물의 왕이 되어야 해'라고 생각하고는 아침이 오길 기다렸다. 날이 밝아 오자 생쥐는 숲속에 있는 모든 동물들을 불러 모아 놓고는 간밤에 있었던 사실들을 그대로 얘기해줬다.

그리고나서 생쥐가 '올빼미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치켜 세우며 올빼미를 동물의 왕으로 추대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동물들은 올빼미를 박수로써 왕으로 추대했다. 모든 동물들과 왕으로 추대된 올빼미는 숲속을 빠져 나와 차량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를 향해 축하행진을 시작했다.

정면에서는 커다란 트럭이 축하행진 대열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밝은 대낮이면 잘 볼 수 없는 올빼미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자신이 동물의 왕이 됐다는 자만심에 빠져 대로 한가운데를 씩씩하게 행진해 나갔다.

올빼미를 뒤따르며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 모든 동물들은 두려움속에서 올빼미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는 가운데 자신들의 왕인 올빼미만을 믿고 축하행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잠시 후, 트럭은 동물들의 행진대열을 덮치며 지나갔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장이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어느 영문 서적에서 읽었던 글이다. 읽은지가 오래돼 내용이 정확하게 옮겨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얘기하고자 하는 줄거리는 크게 빗나가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가지고는 그 사람의 됨됨이나 능력 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하물며 사람의 어느 한 구석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특히 남을 잘못 판단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올빼미와 같이 자신을 과신하게 하거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듦으로써 나타나는 행동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칠 수 있다. 또한 윗사람이 아래 사람이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첨과 감언이설에 현혹될 때는 멀쩡한 대낮에도 앞을 볼 수가 없는 올빼미와 다름없고, 특히 여러 사람의 지도자인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맹자'에 보면 '관수유술(觀水有術) 필관기란(必觀其瀾)'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물을 보는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치는 모양을 보아야한다'는 뜻으로 파도 치는 모양을 가지고 그 물의 깊이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옛날 사람들은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 하여 자신의 모습을 물에 비춰보거나 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찌든 때를 닦아내고, 파도치는 물결을 바라보고는 앞으로 닥쳐 올지도 모를 삶의 고난을 미리부터 준비하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남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때론 쉽게 판단하고 사실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곤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을 돌아 볼 마음의 여유도 없을뿐더러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자신의 귀가 얇아지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사물에 대한 판단은 정상적인지, 또한 자신의 입술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는지 '올빼미와 생쥐'에 관한 이야기를 거울삼아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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