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
  • 양철기 <박사·교육심리>
  • 승인 2015.11.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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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은 망상장애의 하나로 꿈꾸거나 바라는 것을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울 때 스스로 만들어 낸 가공의 세계를 진짜처럼 믿어버리는 인격장애 증상이다. 이런 증상은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주로 발생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거짓으로 만든 지위나 신분, 인품 등을 진짜로 믿어버리려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게 되고 이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행동한다.

보통 거짓말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숨기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 하게 되는데 거짓말이 나쁘다는 걸 본인도 잘 알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느껴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자기도 모르게 이상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리플리 증후군의 사람들에게는 거짓말탐지기도 무용지물이다.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 죄책감 같은 감정이 거의 없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용어는 미국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 발표한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의 소설 속 인물에서 유래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리플리’는 호텔 종업원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재벌 2세 친구를 죽이고 완벽하게 그 친구 행세를 하며 살았는데 리플리는 실제로 자기가 재벌 2세라고 믿고 살아간다.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리플리 같은 정신과적 증상에 관심이 집중됐고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됐다.

주변에서 종종 리플리 증후군 초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사람. 거짓말과 거짓행동의 악순환 과정에서 죄책감이 전혀 없는 사람. 자신은 굉장히 능력이 있고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교실내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이나 가정문제에는 관심이 적고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민주화, 인권문제, 동물보호 문제 등에 열성적인 사람. 면대면 상황에서는 별 말도 없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급진적 좌·우파적 글을 전투적으로 쓰며 인터넷 공간에서 ‘좋아요’에 심취해 있는 사람 등이 이 증상에 가깝다. 한마디로 리플리 증후군은 도피의 전형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치료는 간단치가 않다. 일단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이 거짓말로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처럼 대단하지도 멋있지도 않다는 걸 인정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데 현실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두려움과 괴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대부분 다시 망상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는 동료나 상사들과는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고 시간이 가면서 그 정도는 심해진다.

현실 속 자신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주변에서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주어 허구 속으로 숨을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집단 리플리 증후군’이다. 리플리 증후군이 집단적으로 나타난 경우인데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 현상을 지켜보았다.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이아, 문화혁명 중국 당시 광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증상을 보였다. 권력자 밑에서 국민의 뜻, 심지어 자신의 양심과 반대되는 정책을 권력자가 밀어붙일 경우 처음에는 자기 생각을 지키면서 따라가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들이 반복되면서 진짜 자기는 없어지고 그 권력자 보다 더 권력자화 되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집단 리플리 증후군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건전한 찬반 논쟁이 가능한 이슈이다. 그런데 권력자의 몇 마디로 어느 순간 국정화가 신앙처럼 되어버린 사람들을 보면서 집단적 리플리 증후군이 떠오른다. 개인적 리플리 증후군은 주위 몇몇 사람에게만 불편함과 피해를 주지만 집단적 리플리 증후군은 국가 전체의 존망이 걸리는 문제일 수 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하겠는가?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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