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맞는 비
함께 맞는 비
  • 배경은<사회복지사>
  • 승인 2015.11.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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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사회복지사>

그녀는 오십대 초반의 처녀다.

처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을 때, 그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락으로 몸을 숨겼다. 여러 정신질환자를 만나 보았고 대부분 병식이 뚜렷했기에 라포(상호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입 상태) 형성에 별무리가 없던 내게 그녀의 그런 돌발 행동은 호기심과 안타까움을 자극했다.

주1회, 한 시간가량 정신질환자의 정서와 인지상담, 사례관리를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혹자는 말한다. 위험하지 않느냐고,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오히려 약을 먹지 않는 나나 당신 같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웃어넘긴다.

조금씩 가까워지며 가슴에 엉킨 상처의 실타래 끝을 찾아내 스스로 풀어내는 그녀. 아기 적에 열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아홉 살 무렵부터 먹기 시작한 간질 약은 이제 부끄럽지 않은 일상이 되었고,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지체장애 여동생을 돌보며 나이의 스무고개를 넘었다. 지적장애 2급의 남동생이 엄마의 전부였기에 보따리 장사로 전국을 떠돌던 엄마는 늘 결핍의 대상이었다.

열 살이 되면서 밥을 지어 오빠의 도시락을 싸고 여동생의 똥기저귀를 빨았다. 쌀이 떨어지고 냉골에서 지낼 때는 달님에게 엄마의 안부를 물어야 했다. 가끔 집으로 돌아오시는 엄마는 오랜만에 찾아 온 친척처럼 반갑고도 낯설었다고 한다.

스무 살 이후, 공장 매점의 세평 남짓한 공간이 그녀의 세상이 되었다. 잠시나마 동생에게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하며 죄책감이 들었다는 말도 보탰다.

삶의 나눗셈 뒤에 남은 것, 분노조절장애. 그녀의 또 다른 질환명이다. 원인은 남동생이었다. 조급하고 완벽하며 신경질적인 그녀와는 반대로 느리고 시간개념도 없으며 자신만 생각하는 남동생, 엄마의 젖을 빼앗아간 남동생에 대한 분노가 증상을 키웠다.

어느 날인가, 남동생과 싸우다가 동생의 다리를 문다는 것이 말리고 있던 팔순 노모의 허벅지를 물어뜯은 적이 있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방문했을 때는 마당에서 무작정 서울로 놀러가겠다는 남동생과 그녀가 멱살잡이를 하고 있기도 했다. 겨우 말리고 진정시키자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녀에게 집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뜨개질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실을 선물하고 함께 서점에 가서 원하는 손 뜨게 교본을 고르도록 했다. 또, 대청댐에 가서 호떡을 먹으며 산책을 하고 수암골 골목길을 돌아보며 보지도 않았던 드라마 이야기를 싱겁게 해주기도 했다. 또박또박 밟아 걷는 골목골목을 꼼꼼히 살피고, 만지고 쓰다듬으며 해맑아지는 그녀를 본다. 좋은 것을 보면 엄마생각이 나고 취직해서 돈도 벌어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생겼다. 그리고 착한 남자가 있으면 결혼도 해보고 싶다고 수줍게 웃는 처녀.

그녀의 해결사가 되어 줄 수는 없지만 밥 한 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수암골에서 짜장면을 먹고 나오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그녀와 나는 뿌리는 비를 맞으며 느리게 걸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돕는 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 이라고.

함께 비를 맞으며 서로의 젖어드는 머리카락을 털어주는 그녀와 나의 하늘은 [맑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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