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답해야 할 때
여론에 답해야 할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11.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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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가는 정부가 첫 걸음부터 휘청대고 있다.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위촉 이틀만에 자진 하차했다.

생뚱맞게도 여기자 성희롱 혐의를 뒤집어쓴 채였다. 추문의 사실 관계를 떠나 국가적 이슈의 중심을 차지함으로써 어느 때보다 신중한 언행이 요구됐던 인물이 기자들과 시종 술을 마셔가며 인터뷰를 했다는 대목부터가 일반의 상식에 배치된다.

사실 국사편찬위원회 기자회견에 불참한 사유를 고작 ‘제자들의 반대’로 들면서부터 그의 앞길에는 적신호가 들어왔었다. 청와대와의 통화를 놓고 말을 바꾸기도 했고, 자신은 집필진의 ‘방패막이’에 불과하다고 자조하며 정부에 부담을 주는 이런저런 논란을 야기했다. 이 유약한 노학자가 과연 국정화 격랑을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나왔고, 우려는 바로 현실이 됐다.

그렇잖아도 숱한 난관이 예상되는 국정화 장정의 첫 단추부터 이런 식으로 떨어져 나가니 국정화를 반대해온 국민은 물론 찬성하는 층까지 정부의 미덥잖은 행보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민심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국정화 추진에 대한 반대 의견이 53%, 찬성은 36%로 격차가 17%P까지 벌어졌다.

반대가 50%를 넘어서기도 처음이다. 지난달 중순 조사만 해도 찬반이 동률이었다. 국정화 확정 고시후 반대가 늘어나는 추세였고 최 교수 낙마가 반대 기류에 부채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갤럽이 공개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부정 평가가 49%로 긍정 평가 41%를 8%P 앞섰다. 지난주보다 부정률이 5%P나 상승했다. 지난 8월 25일 남북 합의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서도 62%가 고개를 저었다. 부정 평가한 응답자 중 가장 많은 사람(30%)이 국정교과서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특이한 대목은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은 오히려 지지율이 지난주보다 2%P나 올랐다는 점이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이 국정화 추진의 실질적 주체를 대통령으로 보고있다는 반증이다. 국정화 논란의 역풍을 대통령이 고스란히 맞는 형국이다.

대통령에게 하등 유리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여권은 국정화 정국을 맞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면에 잠복한 친박과 비박, 당·청 간 암투는 여전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당의 수준을 따르지 못한다면 빚어질 결과는 자명하다.

대통령이 여론조사로 표출된 국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절실한 이유 중 하나이다.

재검토가 불가능하다면 우선 교과서 제작기간이라도 2년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

대표 집필진이 황당한 이유로 조기 하차한 해프닝은 1년 내에 교과서를 만들려는 조바심과 무관하지 않다. 과속을 중단하고 학계와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시간과 공을 더 들여야 한다. 역사학자 90%는 좌파,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은 국민이 아니다는 근거도 없고 투박하기만 한 반격으로는 여론을 되돌리기 어렵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세대별로 극단으로 치닫는 점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20대는 78%, 30대는 70%가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부정 평가한 반면 60세 이상은 78%가 잘한다고 평가했다.

세대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다른 것은 일반적 현상이라지만 이 같은 천양지차는 유례가 없을 정도다. 갈수록 젊은 세대로부터 고립되는 자신의 입지를 방치한다면 국가를 경륜할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이 과제 역시 목적은 물론 수단까지 내 의지대로 관철하겠다는 과욕을 버리라는 국민의 고언을 경청하는 데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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