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기상이 서린 단양 온달산성
고구려의 기상이 서린 단양 온달산성
  • 김명철 <청주서경중학교 교감>
  • 승인 2015.11.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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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 김명철

단양은 고구려의 기상이 느껴지는 곳이다. 단양군의 캐릭터에도 온달과 평강이 등장한다. 고구려의 온달과 평강공주가 멀리 단양까지 온 것은 온달산성 때문이다. 강원도 남부 지역 산지를 휘감아 도는 주천강과 동강, 서강 물이 충북으로 흘러드는 곳이 영춘이고, 이 물길이 굽이쳐 흐르는 산 위에 자리 잡은 성이 온달산성이다.

‘삼국사기’에 온달 장군의 고구려군이 아단성(阿旦城) 아래에서 신라군과 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에서 온달 장군은 신라군이 쏜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석의 문제는 ‘아단성’이 어디인가이다. 온달 장군이 전사한 장소가 단양 ‘온달산성’과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성’이라는 설로 나뉘어 있다. 역사적 고증 과정에서 그의 전사지에 대한 견해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삼국사기’의‘아단성’ 또는‘아차성’에서 ‘단(旦)’과 ‘차(且)’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혼란 때문이다. 온달의 전사지를 온달산성으로 주장하는 쪽에서는 고구려 때 영춘의 지명이 ‘을아단’이었으므로 온달이 전사한 ‘아단성’은 지금의 영춘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을’은 위(上)를 뜻하는 말이므로 ‘을아단’이란 ‘한강상류의 아단’으로 보는 것이다.

온달산성은 삼국시대에 산정상부를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683m이다. 성은 바깥쪽에서 보았을 때 높은 곳이 8m를 넘고, 낮은 곳도 6m나 된다. 더구나 산비탈이 몹시 급한 지형에 쌓았기 때문에 실제의 높이보다 훨씬 높게 느껴진다. 성에 오르면 온달이 성을 공격하다가 전사했다는 역사의 기록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벽은 거의 수직으로 쌓았는데 이는 신라 성곽의 특징이기도 하다. 곡면의 처리도 말끔해 실제 전투가 치열했었던 성인데도 북소리, 고함과 하늘을 가득 메운 화살, 번뜩이는 창검이 그려지기보다는 성벽의 선이 주는 유려한 선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성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운 선을 가지고 있는 성이다.

산 아래서부터 고구려의 느낌으로 오른 성이지만 실제 성곽의 축조방식을 보면 신라의 성임을 알 수 있다. 판석을 사용하고, 직선의 성벽을 쌓은 점 등이 신라의 특징적인 축성법을 보여주고 있다. 성에 오르면 영월에서 흘러온 남한강이 휘돌아 단양으로 흐르는 모습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산 뒤에 산이 있고 산속에 또 산이 있는 장관이 연출된다.

온달을 두고 단양과 서울 광진구 사이에 온달 쟁탈전이 치열하다. 그러나 서울의 아차산성은 온달이 회복하겠다던 계립현과 죽령의 서쪽 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단양의 온달산성이 가능성이 더 크다. 외적을 물리치고 우리 민족을 구원한 장수도 아닌 전쟁에서 패배한 장수의 이야기일 뿐인데 온달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뜨거운 원인이 무엇일까? 단순히 고구려와 관련된 이야기가 귀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온달로 대표되는 민초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민초를 대표하는 온달의 삶과 고구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은 아닐까?

지나간 조상의 아름다운 삶에 열광하고, 역사 속의 인물이 현재의 영웅이 되며, 역사의 기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

온 국민을 긴장시킬 수능시험이 얼마 후 다가온다. 온달을 바보로 만든 사람과 그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승화시킨 평강 공주를 생각하며 이 땅의 모든 수험생(온달)들이 장군으로 거듭나서 미래 한국과 인류를 위한 큰 인물들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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