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친절한 복희씨
  • 이지수<옥천 삼양초 교사>
  • 승인 2015.11.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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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아끼던 책이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거리가 되는 여행이라도 떠날라치면 조수석 차 문에 끼어두고 보고 또 보던 소설책이었다. 어느 한 군데를 펼쳐 보아도 바로 읽을 수 있던 손때 묻는 그 책. 이 글을 쓰기 위해 느낌을 다듬다 보니 책이 없어졌다는 아쉬움이 새삼 더하다.

책 속의 이야기는 생기발랄한 긴 머리의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 발랄한 표지와 배반된다. 주인공들은 이제 환갑·진갑 다 지나 ‘노인’ 축에 들어섰거나 이미 노인에 든 이들이기 때문이다. 문득 삶과 죽음처럼 젊음과 늙음도 한끗 차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아직은 손에 닿지 않는 딴 사람들의 이야기 같지만 노인은 곧 나의 미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 노인이 된 어르신들에게 책 표지의 젊은이는 지금도 여전한 ‘나’일 것이다.

오래전 엄마의 처녀적 앨범을 본 적이 있는데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높은 힐을 신은 엄마의 사진은 생경했다. 내가 알던 365일 꼬불거리는 파마머리에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헐렁한 몸빼바지로 생활하던 분은 내가 알던 분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노인이 된 박완서 작가가 진솔하게 쓴 ‘친절한 복희씨’(문학과 지성사·2007)를 읽으며 우리가 흔히 노인을 바라보는 이 시대의 ‘꼰대’라는 시각을 돌아보게 되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유수한 문학지에 실린 작품을 모아 ‘친절한 복희씨’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는데 이때 박완서 작가의 나이 77세였다. 어르신들은 저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책으로 쓰자면 한도 끝도 없다, 소설책 몇 십권은 될 것이라고들 하신다. 그만큼 노인이 될 때까지의 사연들은 젊은이들은 짐작조차 못할 저마다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애환이라는 것을 시간으로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 ‘노인’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작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진중함도 엿볼 수 있었다.

박완서 작가는 ‘저자의 말’에서 말한다. “그립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삶이 마라톤이라 한다면 노인이 될 때까지의 긴 여정의 즈음에 다다른 어르신들은 진정한 승리자일 것이다. 그 긴 시간 속에서 돌아보면 내내 아쉬운 것, 그리운 것, 후회되는 것, 안타까운 것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으나 그 감정을 공유하면서 단순히 후회로 끝내는 것이 아닌, 지금의 나를 이루게 해준 것 혹은 아직도 그리운 게 있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것이니 축복이라 말하는 작가는 참 행복한 삶을 산 것 같다. 박완서 작가는 77세에 신작소설 ‘친절한 복희씨’를 펴내고, 79세에 마지막 산문집을 펴내고 여든이 되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책 속에 실린 9개 단편 모두 어느 것 하나 순탄한 삶은 없다. 지면의 제한이 있어 훗날 노인이 된 자신을 미리 느껴보고자 하는 분들은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채현국 선생의 생을 다룬 ‘풍운아 채현국’ 과 더불어 노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운이 좋으면 다가올 내일에 노인이 되는 행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 아쉬움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다가 담담히 노인이 되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득 내가 어느 여행지에서 잃어버린 ‘친절한 복희씨’는 길을 헤매다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스스로 원하는 주인을 찾아가는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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