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련
한련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11.01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효순

10월의 끝자락에 단아하게 핀 한련을 봤다.

연잎 같은 동그란 잎 사이에 숨어 빨갛게 핀 꽃이 고고한 자태로 내 마음을 당긴다.

가을이 되며 한련은 더 싱싱하게 줄기를 뻗어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운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시들어가며 힘겨워했다. 그래도 뽑지 않고 두었더니 그 모습이 모두 사라지고 싱싱한 모습에 내 마음도 싱그럽다.

한련은 지난봄에 문의에 사는 친구 집에서 우리 집으로 4포기를 데려왔다.

정성 들여 물도 주고 거름도 주어 살뜰히 보살폈다. 얼마 동안 낯설어 힘들어하다가 4주 정도 지나자 내 정성이 통했는지 고운 꽃도 피웠다. 그것도 잠시였다. 그후 여름이 오자 잎도 마르고 봉오리도 시드는 모습이 영 신통치 않았다. 성질 급한 사람이면 뽑아 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문득 생각난 것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서늘해지는 가을 그 꽃이 활기차게 자라는 모습을 학교 방문 때 본 것이 떠올랐다. 안쓰럽고 가련해 보였지만 꾹 참고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거기에 비도 오지 않으니 잎이 늘어진 식물들 보기가 안쓰러웠다. 사람은 더우면 물도 마시고 에어컨도 틀어 더위를 식힌다. 그러나 식물은 사람이 물을 주지 않으면 죽음의 문턱에 서 있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쌀 씻은 물, 나물 씻은 물 모두 모아 꽃밭에 있는 식물들에게 연신 먹였다.

물을 담아 뜰까지 가져가는 것도 힘겨웠다. 밖에 있는 수돗물도 주지만 곳곳에서 보도되는 물 부족의 소문에 가끔 주방에서 남는 물도 재활용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그 모습에서 사람들 삶의 한 부분을 보는 것처럼 그런 때가 가끔 있다. 사람이 생활하다 몸이 아픈 것처럼 식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늘 곁에서 함께 지내고 있어 내 분신처럼 아껴주고 돌보아 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정성 들여 가꾼 꽃들은 내 마음을 아는 듯했다.

비가 별로 오지 않았지만 올가을 아주 고운 꽃을 피웠다. 그 꽃 중에 가장 내 눈을 끄는 것은 한련이었다.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내 마음을 신나게 한다. 붉게 물드는 단풍나무 옆에 초록빛으로 싱싱하게 뻗어가는 줄기에서 꽃피우는 모습에 내 눈에 생기가 돈다. 희망이 솟는다.

한련은 연꽃을 닮았으나 뭍에 산다 하여 한련화라 부른다.

한련과에 속하는 일년초로 덩굴 모양의 줄기가 땅으로 뻗는다. 6월에 잎의 겨드랑이에서 나온 기다란 줄기 끝에 황색, 자색, 적색, 적홍색, 크림색의 오판 화가 핀다. 잎은 연잎 모양으로 어린잎과 씨는 향미료로 쓰이고 꽃은 식용화로 샐러드 장식에 쓰고 있으며 허브의 한 종류이다.

한련의 동그란 잎을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은근히 바라는 것이 있다.

우리 어머니도 한련처럼 다시 건강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한련도 그렇게 힘들었던 여름을 보내고 다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데…. 자주 누워 계시는 모습이 여름날의 한란 같다.

어머니도 이제 그 힘이 다해 쇠약해지셨지만 서늘한 기온 속에 자라는 한련처럼 건강해지면 좋겠다. 삶은 그렇게 마음대로 펼쳐지는 것은 아니니 다만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머지않아 서리가 내리면 한련은 그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살아있는 동안 주어진 일을 열심을 다 한 것처럼 내 삶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본다.

차가워지는 늦가을에 싱싱하게 뻗어가는 한련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