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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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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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
26년 전 공직을 처음 시작한 필자는 과거를 뒤돌아볼 때 격정의 세월과 역사 속에 경제 발전과 행정적으로 많이 변화되었다는 생각이다. 쌀 자급자족이 최우선이었던 정부정책에 농업이 대접을 받던 그 시절에는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근무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아침에 출근,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면사무소에서 정해준 담당마을에 가서 농사행정지도를 하루 종일하면서 농민들과 동고동락했다. 사무를 보려고 사무실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부면장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러니 밀린 일은 퇴근시간 무렵부터 야근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개인차로 출장을 다니지만, 그때는 걸어서 20여리 길을 다녔고, 때로는 자전거를 이용했다. 형편이 좀 나은 선배 직원들은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지금의 후배 공무원들이 생각하면 까마득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통신도 열악하여 교환이 연결하여 주던 자석식 전화기인 일반전화와 행정전화 2대가 고작이었다.

그 시절 시·군 행정은 상명하복의 지시 일변도여서 말 그대로 군대식으로 엄하여 아무리 잘못된 지시라도 듣지 않으면 지시 불이행으로 징계를 받아야 하는 세월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공무원 사회는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34년 전 우리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유신헌법'만이 살길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맨이 되어야 했다. 공무원들은 단지 정부의 지시에 따라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다.

1976년 '반상회의 날'을 만든 정부는 매달 공무원들을 강제로 참석시켜 정부정책을 홍보케 하였다. 전두환 정권시절에는 그 정권대로 찬양하며 홍보해야 했고, 노태우 정권시절에도 공무원들은 그렇게 지내왔다. 지금도 반상회는 존재해 주민홍보는 물론, 실적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지금까지도 폐지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12월 치러진 제6공화국 대통령 직선제 선거당시 공무원들은 모두 여당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힘이 없었던 공무원들을 '정권의 하수인이고 정권유지의 도구'로 생각한 권력자들은 회유와 협박, 지시로 눌렀기 때문이다.

선거 며칠 전 행정공무원들을 위로한다면서 군수, 읍·면장들은 소속 공무원들을 한 명씩 은밀히 불러 이번 선거에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도록 주민설득을 상기시키면서 기만원이 든 봉투를 두 차례 준 일도 있었다.

정보기관에 앞서 주민성향파악까지 해 시·군에서의 예상 득표율 취합 결과가 거의 적중하였으니 정권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의 행정추진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했다.

며칠 전 행정자치부가 전국 16개 시·도지사에게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에 지급하는 보조금지원을 끊도록 지침을 내렸고, 지난 10일에는 도지사가 부단체장 회의를 통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 협정체결을 위해 적극 지원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교육 및 홍보강화 그리고 의원설명회 개최, 반대단체에 대한 보조금지원 금지와 공무원의 반대운동 동참금지 등을 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것을 주민의 손으로 뽑힌 단체장들이 단지 정부정책이라 하여 무조건 따라간다면 이는 주민을 정서와 지방자치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자유무역협정이 서민에게 가져올 태풍으로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고위공무원들의 생각도 성숙된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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