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22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은 자의 기도
오 향 순 <수필가>

그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가을 빛 나뭇잎 위에 햇살이 내려앉는군요. 따스히 품어주는 온기를 떠나 언제든 나뭇잎은 떨어져 나가겠지요.

뜨겁게 만나 더불어 삶을 이루던 자들이 문득 아픔과 그리움을 남기고 떠나가듯이.

그것은 하늘의 섭리일 것입니다. 남은 자들의 막막함을 어루만지고 다독여 다시금 일어서게 하는 힘 또한 섭리이겠지요.

가까운 곳에서 목회하던 동갑내기 사모님이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유방암'이라는 가슴 무너지는 선고를 받고 아픔을 견디다 그가 떠나가기까지는 너무나 처절했습니다. 통증도 통증이려니와 투병이 길어지면서 당연시되는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에 나는 전율했습니다. 본인은 어땠을라구요. 나를 위시한 사람들이 그토록 이기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나 역시 특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슬픔이 아닌, 기다리기라도 했던 의식(儀式)처럼 우리 앞에서 정연하게 치러졌습니다. 한줄기 통곡도 없이 땅에 묻히는 그가 차라리 외롭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삼 년 여 동안 무섭게 통증과 고독을 견디던 그를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담담히 우리는 그를 보냈습니다.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그의 열네 살 아들아이의 가슴에 어쩌면 눈물방울보다 진한 멍울들이 맺혀져 있을 것 같아 안쓰러움에 마음 졸이던 그 즈음, 친정아버지의 중태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의 기도는 그동안 딸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회한의 눈물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만이라도 못난 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는 소망이었습니다. 어렵게 한밤을 지내시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시더군요. 하루 두 번 씩만 면회가 허락되는 중환자 실 앞 대기실은 언제나 목마름을 느끼게 했습니다.

말씀대신 힘겨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어서 가라고 손짓하는 모습이 아버지의 팔십 평생 삶이었습니다. 큰일을 이루신 건 아니지만, 가정과 자녀들을 살뜰히도 가꾸셨던 분, 삼 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고독의 그림자를 지고 사셨던 아버지.

여름 한 달 동안 누우신 채로 칠 남매를 두루두루 만나 보시고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몸져누워 자식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고 평소 버릇처럼 말씀하시더니 그 뜻대로 어느 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시더군요. 모두들 그랬습니다. 호상(好喪)이라고. 하지만, 우리 딸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노라고 분주한 생활 속에 묻혀 사는 딸을 늘 챙기시던 아버지의 사랑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지난 겨울 내가 몸을 다쳐 누워 지낼 때 쾌유하기를 기도하고 계시다는 편지와 수표 한 장을 보내주셨던 아버지.

'사랑하는 내 딸, 얼른 일어나 시어머님 편히 모실 것이며 임 목사님 잘 보필하고 보배로운 남매 자랑스럽게 키워야 한다.'

그 편지가 아버지의 유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나의 여름이 지나갔습니다.

마음 설레도록 고운 산, 맑은 날씨. 그러나 이 가을에는 여행을 꿈꾸기보다 먼저 떠난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군요.

지금은 천국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을 테지만 이 세상에서는 애석한 삶을 마쳐야 했던 그 사모님이 내가 어떻게 살기를 기대할까. 막내딸을 유독 아끼셨던 아버지께서는 이 딸을 향하여 무엇을 소원하실까. 느슨해지려는 마음에 항상 숙제처럼 간직하렵니다.

이 가을, 정갈한 기도의 마음이고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