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 김주희 <청주 수곡중학교 사서교사>
  • 승인 2015.10.26 18: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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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 김주희

퇴근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간첩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지난 8월 재심을 통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은 재일교포 2세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이분은 1975년 서울 의대 재학 중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온갖 모진 고문을 받았고 13년을 복역했다. 앞길이 창창한 의학도의 삶이 국가에 의해 송두리째 바뀐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국가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부패했을 때 과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헌법상의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가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떠올랐다. 소설 ‘소년이 온다’(한강 저)는 2014년 한해 출판 동향을 정리하는 여러 매체에서 그 해에 출간된 책 중 최고의 수작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한 책이라 관심을 갖고 읽은 책이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내 또래의 학생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국사 시간에 우리나라 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졸업한 세대이다. 서사 없이 외워야 하는 암기에 유난히 약했던 나는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던 곳의 흔적이나 신석기 시대 간석기가 발견된 지역들을 외우다 지쳐 역사 공부에 일찌감치 흥미를 잃었다. 더구나 국사책 말미에 짤막하게 언급된 현대사는 학기말 어수선한 시기에 얼렁뚱땅 진도를 마치기가 일쑤여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5·18 민주화 운동을 공부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대학 입학 후 5·18 민주화 운동은 10·26 이후 전두환이 군사력을 동원해 정권을 잡으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이에 강하게 저항했고, 신군부가 저항하는 광주시민을 저격한 사건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당시 광주 시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권이 얼마나 무참히 깨졌는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을 향해 총대를 겨누는 것은 그 어떤 범죄보다도 극악무도하다는 것을 느꼈다.

중학교 3학년 동호는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은 친구 성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상무대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수, 은숙, 선주를 만난다. 광주에서 열흘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열흘이 지난 이후 그곳에서 불의에 항거했던 사람들이 이후 어떤 고초를 겪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소년 ‘동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 또는 ‘그’라는 인칭이 아닌 ‘너’라는 인칭을 사용해서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그런데 이러한 장치가 묘한 울림을 준다. 작가가 분명히 ‘동호’를 ‘너’라고 칭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순간순간 동호가 아닌 독자인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가 작중 인물들과 함께 책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몇 번이나 책을 접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전달되어 책을 계속 읽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었을 때 책을 접지 않고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감내해야 할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우리를 향해 소년이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980년대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소년이 온다’는 어떤 책보다도 훌륭한 역사 참고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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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2015-12-06 22:31:36
그러셨군요...저도 이 책을 무척 가슴아프게 읽었습니다. 저번에 광주에 가서 한강 작가님을 뵙고 오기도 했지요...한강 작가님이 책 출간을 빨리 하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책이 출간된 날짜는 5월 19일이 되었다고 해서 무척 놀라기도 했지요....그리고 이 책을 출간하고 나서도 묘역에 묻혀 있는 그 분들의 꿈을 꾸셨다고 하셨습니다. 몰랐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고마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