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례를 서며
결혼식 주례를 서며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10.21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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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결혼시즌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결실의 계절 가을은 결혼하기 딱 좋은 계절이지요. 그래서인지 요즘 이곳저곳에서 주례 서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싫지 않은 부탁이긴 하지만 선뜻 응할 수 없는 부담스러움이 있습니다.

성스러운 결혼식을 주재하는 만큼 행동거지도 조심해야 하고,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세태라 잘못되면 원망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례 날짜가 잡히면 신랑 신부처럼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하고, 상갓집 조문도 삼가는 등 부정탈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게 주례가 가져할 마음가짐이자 기본 예의 입니다.

벌써 주례 서는 나이가 되었나 싶어서인지 아내가 주례 서는 걸 탐탁지 않아 합니다만 신랑 신부가 제자라든지 혼주와 각별한 인연이 있으면 기꺼이 서기로 했습니다. 비록 필부이긴 하나 맺은 인연에 감사하고 보은하는 특별한 선물이라 여겨 성심을 다하려 합니다.

평소 틀에 박힌 식상한 주례사를 경멸했습니다. 그래서 신랑 신부와 혼주의 가풍에 걸맞은 혼이 담긴 주례사를 하고자 몇 날 며칠을 고민합니다. 설사 신랑 신부가 건성으로 듣는다 하더라도 인륜지대사인 결혼식 주례사를 허투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주례 없이도 결혼식을 합니다. 양가 혼주가 역할을 바꾸어 성혼선언하고 덕담하는 일종의 형식파괴 결혼식이죠. 이 또한 나쁘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결혼식의 품격은 주례의 인품과 주례사의 여운에서 나오는 만큼 주례사를 생략하는 약식 결혼풍속도는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하고 싶다고 주례가 되는 게 아닙니다. 반려자도 선택이지만 주례도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크게 세 부류의 주례가 있습니다.

첫째가 가문 과시형 주례입니다. 정부의 고관대작이나 유명 정치인을 주례로 모셔서 행세하는 집안임을 은근히 과시하는 거죠.

둘째는 새내기 부부의 본보기형 주례입니다. 부부 금슬이 좋고 아들 딸 잘 키운 덕망 있는 대학교수나 성직자가 이에 해당합니다.

끝으로 생계형 주례입니다. 주례를 모시기 마땅찮아 예식장이 확보하고 있는 생면부지의 주례를 세우는 경우입니다.

아무튼 축첩했거나 비리 전력이 있는, 향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고관대작이나 정치인보다 화려하지 않아도 평소 결혼생활에 흠결이 없고 혼주나 신랑 신부가 존경하는 인물이 좋습니다.

주변에 주례로 손색없는 향기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세월에 익어갈수록 향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이가 차면 모두 단란한 가정을 꾸려 부모님과 부모님의 부모들이 그러했듯이 자식을 놓고 자녀들을 반듯하게 키워 출가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가문도 번성하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도 보장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건 기적이자 축복입니다.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로 한 생을 사는 건 거룩함 자체입니다. 그를 통해 인류가 유지되고 발전하니까요.

부부가 되어 아버지 어머니로 사는 인생항로엔 무지개만 뜨는 게 아닙니다. 거센 폭풍우도 만나고, 때때로 넘기 힘든 벽과 암초에 고초를 겪기도 합니다. 담금질을 통해 강철이 되듯이 그런 고난이 단단한 부부를 만듭니다. 부부가 합심협력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 세상에 넘지 못할 파고가 없습니다.

그게 부부의 힘이고 사랑의 위대함입니다. 그러니 덕 보려 하지 말고, 받으려만 하지 말고, 집착도 하지 마세요. 날마다 서로 토닥토닥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십시오. 주는 게 사랑이고, 주는 게 행복입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 옆에 있습니다.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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