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막혀
길이 막혀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10.18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효순

모처럼 일주일 동안 외국에 있는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느새 바람처럼 지나갔는지 귀국 준비를 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짐 정리를 한다. 넓은 바다가 보이는 숙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어린 손녀 둘과 모두 여덟 명의 대가족이다. 막내는 직장 일로 먼저 귀국했다. 참 오랜만에 가정을 이룬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늘 사는데 좋은 일만 있으란 법은 없는지 마지막 날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더구나 그 다음 날은 친정 큰 조카 결혼식 날이다. 남동생의 집에 개혼인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LA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린다. 끝이 없이 넓게 펼쳐지는 들과 나무 없는 산에 소나기가 내린다. 다섯 시간을 달려왔는데 갑자기 차가 밀린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승용차와 대형 트럭이 줄을 이어 기어간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다. 올 것이 온 것처럼 많은 차가 교통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되돌아간다.

큰 아이는 차를 잠시 멈추고 알아본다. 갑자기 내린 홍수로 산사태가 나서 200여 대의 차가 흙더미에 덮쳤다고 검은 얼굴을 한 거인 같은 경찰관이 말한다. 눈앞이 캄캄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공항까지 가려면 몇 시간 정도 남지 않았는데 기막힌 것은 LA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 돌아가려면 10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예약한 비행기 표는 다시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이 수소문하여 연락하니 그 다음 날 12시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는 포기였다. 문제는 내일 새벽에 도착해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정이 쪼개지고 만 셈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혼식 전날 귀국 일정 잡자고 한 것을 남편이 어기고 하루를 늘린 셈이었다. 이왕 아이들 보러 갔으니 하루라도 더 있다 오자고 했다.

누가 이렇게 될 줄을 알았던 말인가. 괜히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돌보는 것도 이웃에 계신 분께 다시 어렵게 전화를 드려야 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여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다. 다 소용없는 일인데 속상했다.

모두 다시 다른 길을 찾아가는 차들로 큰길은 불꽃이 가득 피었다. 차 안에서 잠을 자야 할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모처럼 효도 한번 하려고 한 것이 마지막날에 이렇게 되었으니. 삼형제는 서로 연락하여 비행기 표도 바꾸어 놓고 숙소도 여기저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찾느라 여념이 없다.

난 느리게 가는 차 안에서 7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하나하나 꺼내본다. 세상과는 두절된 깊은 산 속에서 만난 자연. 숙소 방문 앞까지 와서 어린 손녀가 주는 먹이를 가지고 가서 먹는 아기너구리. 사람의 손에 있는 먹이를 먹는 사슴. 실감 나지 않는 자연 속에 푹 빠져 버린다. 은하수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가족들과의 만남. 그동안 마음엔 담아두었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며 산속의 밤은 깊어갔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큰 며느리가 숙소를 겨우 찾게 되었다. 다행히 방 셋을 구할 수 있게 되어 우리는 100리가 되는 곳까지 가서 여정을 풀었다. 그곳에는 우리처럼 길을 멈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숙소는 을씨년스러웠다. 인도 여인이 열어주는 방에 들어서니 바퀴벌레가 기어가고 있다. 그나마 이런 곳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길이 막혀 3형제가 함께 나눈 결속력은 보기 좋았다. 그리고 대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