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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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5.10.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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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小品文
▲ 강대헌

사도(思悼), “너를 생각하며 슬퍼하노라!”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이름, 사도. 산산이 부서지고, 허공 중에 헤어지고, 불러도 주인 없고, 부르다가 내가 죽을 것 같은 이름, 사도.

1. 멀거나 가깝거나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는 가장 먼 거리가 될 수도 있고, 가장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거리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거리의 간극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가장 먼 거리는 가장 덩치가 큰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를, 피를 토하듯 아버지를 원망하는 아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요. 물론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더 큰 힘으로서의 권력을 가진 아버지가 어떤 특정한 기준을 내세워서 아들을 재단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의 심장은 갈기갈기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조의 기준은 요지부동 ‘공부와 예법’이었고 사도세자는 ‘사람의 정’을 꿈꾸었으니까요.

2. 얼마나 떳떳하냐

사도세자 또한 어린 세손(훗날의 정조)의 아버지였습니다. 세손의 명민함이야 어떤 감탄의 표현으로도 부족할 겁니다. 세손은 할아버지의 두터운 신망을 얻을 만큼 지혜롭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만큼 살갑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세손이 보는 앞에서 활을 쏘고 있던 사도세자는 화살 가운데 한 개를 허공으로 쏘아 보내면서 “(과녁을 벗어난 삶이) 얼마나 떳떳하냐”라는 말로 자신은 영조의 뜻대로만 살지는 않겠다는 집념을 밝혔습니다. 할아버지의 틀 안에 있는 듯한 세손에게 섭섭함을 드러내지도 않을 뿐더러 세손의 아비로서 갈 길을 당당하게 선포했던 겁니다.

3.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

무덤과도 같은 뒤주에 갇힌 8일째 사도세자가 마침내 숨을 거두자 영조는 뒤주 안으로 손을 넣어 사도세자의 얼굴을 매만지고 울먹이면서 말을 했습니다. 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은 아들을 잃고 절규하던 이스라엘 왕국의 다윗 왕을 연상시켰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여담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제가 만약 연극배우라면 다윗 왕의 저 처절한 독백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길 자신이 없을 겁니다. 마치 실성이라도 한 사람처럼 내뱉은 말을 어떻게 감히 그대로 옮기겠습니까.)

처음엔 궁금해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어서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영조에게도 그만의 고해성사(告解聖事)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또한 사도세자가 어린 세손에게 끝끝내 마저 하지 못했던 심중에 남아 있던 말 한마디는 왕이 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진찬연(進饌宴)에서 보여 준 부채춤의 자락을 통해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삶과 죽음의 사이를 오가듯 아득하게 울려 퍼지던 생황의 가락은 참으로 처연하더군요. 영화 <사도(The Throne·2014)>는 섬세하면서도 묵직했습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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