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흥취
가을의 흥취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0.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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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공자(孔子)의 말 중에 ‘시에서 감흥을 일으킨다(興於詩)’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시는 시경(詩經)을 말하는 것이지만, 시경(詩經) 시 305편 가운데 160수가 민간가요임을 감안하면 이 시를 시경 외에 일반적인 시까지 포함해 생각한다 해도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고로 시인은 감흥을 잘 일으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쓴 시를 통해 감흥을 전달받곤 한다. 가을이 주는 감흥도 마찬가지이다. 감흥을 잡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시인의 시를 통해 그것을 전달받는 것은 커다란 기쁨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가 전달해 주는 가을의 감흥은 과연 어떠했을까?



가을의 흥취(秋興)



玉凋傷楓樹林(옥로조상풍수림) 옥같은 이슬에 단풍나무 숲에 나뭇잎 시들고

巫山巫峽氣蕭森(무산무협기소삼) 무산과 무협에는 쓸쓸한 기운이 가득하구나

江間波兼天湧(강간파랑겸천용) 강 사이 물결은 하늘까지 치솟고

塞上風雲接地陰(새상풍운접지음) 요새 위 바람에 밀려든 구름은 땅에 닿아

어두컴컴해 지네

叢菊兩開他日(총국양개타일루) 무더기 국화 두 송이에 옛날 눈물 피어나고

孤舟一繫故園心(고주일계고원심) 외로운 배 끈 하나에 고향생각이 매어있네

寒衣處處催刀尺(한의처처최도척) 겨울옷 준비로 곳곳에 마름질하는 손길

바쁜데

白帝城高急暮砧(백제성고급모침) 백제성 저 높이 저녁 다듬이 소리 들리네



이슬은 옥처럼 맑고 곱지만 나뭇잎에는 독하기가 그지없다. 이슬을 맞았다 하면 멀쩡했던 나뭇잎이 금세 시들어 떨어지고 마니 말이다.

시인의 거소 근처에 있는 단풍나무 숲에 단풍잎이 시들어 떨어졌다. 멀리 보이는 무산(武山)과 무협(武峽)에는 쓸쓸한 기운이 가득하다. 가을이 깊었음을 직감한 시인은 강가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강 사이로 물결이 솟구쳐 올라 하늘에 닿을 듯했고, 깎아지른 요새 위로는 바람에 밀려든 구름이 땅에 닿을 듯 낮게 깔리어 어둑어둑하다. 심술궂은 사나운 날씨가 가을의 스산함을 배가시킨다. 이에 더욱 쓸쓸해진 시인은 옛 추억과 고향 생각에 잠기고 만다.

때마침 무더기로 나 있는 들국화에 꽃이 두 송이 피어 있었는데 시인은 이 꽃들을 보고 가족과 헤어지던 날의 눈물을 떠올린다. 그리고 강가에 줄 하나로 매여 있는 한 척의 배로 눈길이 가는데 시인의 고향 그리움도 함께 매여 있다. 외로운 시인의 심사가 절묘한 비유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겨울이 코앞이다.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겨울옷을 깁고 만드느라 바쁘다. 우뚝 솟은 백제성에 저녁이 들자 다듬이 소리가 급한데 이는 가족의 겨울옷을 준비하느라 그런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시인에게 다듬이 소리는 외로움 병을 도지게 하는 고통의 소리이다.

가을은 스산하고 쓸쓸하다. 자연의 아름다운 경물들조차도 외로움을 느끼게 하곤 한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 또한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가족과 고향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외로움은 차라리 둘도 없는 친구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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