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기준 강화하면 될 일을
집필기준 강화하면 될 일을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10.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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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현행 검인정 교과서 7종은 생산자들이 반(反)국갇반(反)체제적 사상을 갖고 있고 그들을 추종하는 교사들이 중간사용자로 이를 선택한다. 결국 학생들은 반체제·반국가적 역사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복거일). “한국 진보 좌파 세력들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기회주의,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왜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 하느냐, 이게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의 현실이다”(김무성). 학생들을 반체제·반국가주의, 패배주의,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물들이는 불온한 역사교과서의 창궐을 걱정하는 이분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망국의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교육부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에 관한 한 절대적 권한을 쥐고 있는 곳이 정부, 정확하게는 교육부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들어 출판사에 제시하고 이 기준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검정한 후 유통을 승인한다. 현행 역사교과서들도 이같은 교육부 집필기준에 따라 제작됐고 검정을 통과했다. 정부가 제시한 제조기법을 따랐고 검사도 통과해 유통된 상품을 돌연 불량품이라며 직접 정부가 만들겠다고 나선 꼴이다. 제조사를 문제 삼기 전에 엉터리 제조기법을 만들어 제공하고 검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감독관청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 순서이다. 역사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엄정한 집필기준을 만들지 못하고 부실한 검정절차를 운영한 교육부의 무능부터 바로잡고 대안을 찾는 것이 맞다.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 간사도 “현행 검인정 체제하의 교과서 집필기준은 방향성만 제시할 뿐 문제 해결의 방식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방향이 아니라 구체적 방식까지 세세하게 규정한 지침으로 대폭 보강하면 될 일이다. 예컨대 ‘정부의 공과를 서술할 경우에는 균형 있게 다루도록 유의한다’는 지침은 너무 모호해 집필자의 사견이 반영될 여지가 큰 만큼 교육부가 직접 역대 정권의 공과를 평가한 지표를 제공하고 그를 따르도록 하면 된다. ‘민족운동의 흐름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기도 했으나…민족의 독립을 위해 좌우가 힘을 합쳐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을 서술한다’는 지침은 좌익의 활동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크므로 학생들의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크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투쟁은 일절 배제토록 못을 박으면 된다. ‘민주화 과정이 장기 집권 등에 따른 독재화로 시련을 겪기도 하였으나 이를 극복하고…’라는 대목 역시 반체제·패배·종북주의 집필자들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 독재의 격이 확연히 다른만큼 ‘한국적 민주주의’ 로 기술토록 유도하면 된다.

여당 분석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검정제가 도입된 후 지금까지 교과서를 집필한 학자 128명 중 83명(64.8%)이 좌파 내지는 진보 성향이라고 한다. 특히 문제가 많은 현행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을 집필한 36명 중에서는 31명이 좌파 성향으로 분류됐다. 이 문제도 집필기준에서 집필자 자격까지 규정해 좌파를 걸러내면 해결된다. 전교조 출신은 물론이고 시국선언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학자들은 집필자격을 박탈하는 것이다. 미래를 짊어질 어린 학생들이 패배주의적 역사관에 위축되지 않도록 ‘위안부’ 역사를 없던 것으로 하려는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충고도 지침에 덧붙일 필요가 있다.

교육부 차관 전결업무에 불과한 ‘집필기준과 심사 강화’로 해결하면 될 일을 굳이 국정화로 밀어붙여 소모적 정쟁과 국론 갈등을 초래할 이유가 없다. 좌파에 점령당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학계와 교단이 반대 일색이고,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과 함께 북한에 비교되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충정은 외면받고 총선에 대비해 여당 내분을 봉합하고 이념 논쟁에 불을 지펴 보수 대결집을 꾀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공산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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