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 윤원진 기자
  • 승인 2015.10.07 1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 윤원진 차장(충주주재)

어용(御用),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가 정확히 어울리는 곳이 있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다.

이 대학은 최근 학장이라는 사람의 학교 폄하 발언으로 전국적인 망신을 산 바 있다.

교수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SNS상의 교내 대화방에 들어가 자신의 학교를 ‘지잡대’로 표현한 것이다.

‘지·잡·대’는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로 ‘지방의 잡 대학’을 이르는 말이다. 지방 대학을 나오면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내포한 자조적인 단어이다.

이런 학장의 ‘막말’은 얼마 전 발표된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를 놓고 책임과 대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건국대 글로컬캠퍼스는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뒤 동문교수협의회 등이 주축이 돼 부총장을 비롯한 대학본부 보직자 사퇴, 쇄신위원회 재구성 등을 요구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동문교협 등은 대학이 추진한 구조개혁이 원천적으로 잘못됐다며, 이제라도 ‘제로베이스’에서 진정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주총동문회도 ‘지잡대’ 사태가 터지자 성명을 통해 해당 교수의 교수직 사퇴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동문들의 이 성명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학교의 주인인 학생과 교수들이 입을 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총학생회는 이 대학 출신 모 학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학장이 학생회 임원들을 회유해 학생들의 대응을 자제시켰다는 내용이다. 반면 일반학생들은 대응할 방법이 없어 속만 태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협의회도 성명이나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이번 사태가 조용해 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충주총동문회는 7일 글로컬캠퍼스 교내에 현수막을 게시하며 대학본부측의 각성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학측은 곧바로 동문들이 내 건 현수막을 철거하는 ‘전례 없는 행동’을 저지르며 동문들의 걱정스런 마음에 불을 지폈다. 동문들은 자존심이 현수막처럼 바닥에 떨어졌다며 다음주부터 강경한 투쟁에 나설 것을 선포한 상태다.

건국대는 그동안 ‘민족건대’라는 애칭으로 불려왔다. 8~90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해 전개된 학생운동에서도 강한 결집력을 과시한 바 있다.

이번 사태는 학생회의 어용, 교수협의 적당주의, 대학본부의 독선이 빚은 학교 역사상 최대의 위기로 보여진다. 이들은 아마도 ‘학교발전’을 야합의 명분으로 삼았을 것이다. 알겠지만, 대학의 주체는 학생이고 교수이다. 다수의 여론을 무시한 채,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면 결국 자멸할 것이 분명하다. 그 학생회가, 그 교수회가, 그 대학본부가 학교발전을 위해 지금까지 얻은 성과는 대학구조평가 D등급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