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유교
베트남 유교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10.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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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베트남이 한자 문화권이라는 것은 많이 안다. 그러나 그들이 유학에 정통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 베트남 아가씨들이 한국으로 시집을 많이 오게 되는 것은 이러한 유교적 동질성도 한 몫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를테면 베트남 색시가 친정에 퍼다 준다는 말을 하기 전에 우리 부인네들은 안 그런가 물어야 한다. 우리 며느리들도 하고 있거나, 하고 싶지만 못할 뿐이다. 가족 간의 유대, 집안의 중요성, 인간관계에서의 상하관계 등이 유교에서 가르친 것이라면, 정신적 문화에서는 월남인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학생들과 함께 간 베트남에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은 그곳의 전통대학인 ‘국자감’이다.

절도, 성당도 많은 곳이지만 그들이 국가이데올로기로 유학을 받아들였다는 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조선을 세우면서 불교에서 유교로 갈아탔듯이, 그들도 민간에서는 불교를 믿었지만 통치이념은 유교를 내세웠다.

그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과거제도다. 과거는 전세계에서 우리와 중국을 포함하여 세 나라만 있었던, 서양인들이 극찬하는 인재등용의 방식이었다.

사실 나도 서양인의 책을 통해서야 과거제도가 그렇게 훌륭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야 ‘최진사’부터 ‘춘향전’에 이르기까지 과거제도가 익숙하지만 서양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서양은 세습문화였지만 우리는 선발문화였다.

월남의 국자감을 가면 입구에는 우리 서원 입구처럼‘하마’(下馬) 비가 있고 한문의 세계가 펼쳐진다. 1076년에 세워졌으니 역사가 깊다. 일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그곳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는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을 공부했다고 한다.

15세기에 크게 중흥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초기에는 오경 위주로 가르치다가 주자학의 영향으로 15세기에는 성리학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알다시피 오경은 전통유학서인 ‘시’(詩), ‘서’(書), ‘예’(禮), ‘춘추’(春秋), ‘역’(易)을 가리키고, 사서는 거기에 끼지 못하던 공자와 맹자의 어록인 ‘논어’(論語)와 ‘맹자’(孟子) 그리고 위의 예(기) 가운데 두 편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주자(朱子: 1130-1200)가 끄집어내 편집한 체제이다. 따라서 사서라는 개념이 들어가면 이미 주자학의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유학을 가르치는 곳답게 공자를 모시는데, 그를 중심으로 안회(안자: 복성復聖), 증삼(증자: 종성宗聖), 자사(자사자: 술성述聖) 그리고 맹자(아성亞聖)상이 모셔져 있다.

구석에는 월남유학자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퇴계, 율곡의 위패인 셈이다. 그리고 급제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진 비석도 정원에 모셔져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인의예지(仁義禮智)만 강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예지’ 대신 ‘재덕’(才德)을 강조한다.

우리의 유학이 전통적 관례를 중시하는 예학의 특징을 갖는다면, 그들은 실용적인 능력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도자기에도 충효(忠孝)를 써놓는 것으로 보아 윤리적 관점은 엇비슷한 것 같다-그래서 월남 며느리들이 고향집에 퍼다 주는 것을 효심으로 너그럽게 봐달라는 말이다!

내가 번역하고 싶은데도 아직 못하고 있는 책이 미국서 얻어온 ‘이슬람의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나온 ‘월남유학사’다. 그런데 영 ‘재덕’이 딸린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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