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추억 싣고
기차에 추억 싣고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10.0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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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아이들은 기차를 ‘차 중에서 가장 큰 차, 철로 위를 다니는 차, 뱀처럼 긴 차’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왠지 씁쓸하다. 하긴 마이카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니 기차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있을 리 없다.

기차는 광산에서 채굴한 무연탄이나 철광석을 보다 많이 실어 나를 목적으로 1804년 영국의 발명가 리처드 트레비식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1829년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만들면서다.

1880년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기관차를 만들었고, 1912년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많은 화물을 보다 빨리 실어 나를 수 있는 괴물이 지구촌에 출현한 것이다. 교통혁명이었다.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우리의 의지가 아닌 일제에 의해서 기차가 도입되었다.

1899년 일제가 경인선을 부설해 증기기관차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고, 1905년부터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충북선, 장항선, 전라선, 경춘선, 중앙선을 부설해 증기기관차를 운행했다.

일제가 한반도에 이렇게 많은 노선을 개통시킨 것은 원활한 식민통치와 인적,물적 자원을 대량으로 수탈하기 위함이었다. 

기차를 통해서 우리의 농축산물과 천혜의 지하자원을 약탈해 갔고, 젊은이들을 징용해 전쟁터 총받이로 노역자로 실어 갔으며, 순박한 처녀들을 강제로 납치해 정신대로 실어갔다.

그런고로 당시 기차는 우리민족의 고혈을 빨고 착취하는 저주의 대상이었다.

기차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졌고, 두 팔로 엿을 먹였다.

안타깝게도 기차에는 그런 민족의 아프고 슬픈 회한이 서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광복 후 국민생활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우리의 손으로 철로를 보강하고, 기차의 모양과 속력을 업그레이드 시켜나갔다.

해방호, 통일호, 무궁화호, 비둘기호, 새마을호로 진화했고, 1974년 지하철시대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완행열차를 타고 외갓집에 다녀오기도 했고, 급행열차를 타고 서울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무연탄과 시멘트와 자동차를 실은 긴 화물열차가 서울로 부산으로 칙칙폭폭 힘차게 달렸다.

언제부터인가 기차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엿을 먹이던 아이들의 자식들이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철조망이 가로막혀 철마가 북녘으로 달리지 못하고 있지만, 민족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꿈과 사랑과 풍요를 실은 기차로 거듭났다. 그러자 한강의 기적이 왔고, 서울과 부산을 2시간 9분대로 쾌속 질주하는 KTX시대가 열렸다.

머잖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국제선 특급열차 시대가 온다.

북한만 협조하면 당장이라도 꿈의 열차를 타고 모스코바와 파리를 다녀올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의 대한민국이 커졌다.

기차를 사랑한다.

625때는 피난열차가 되어 피난민을 실었고, 전후에는 통근열차가 되어 수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을 실어 날랐다.

어릴 때 기차놀이를 하며 자랐고,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오는 꿈을 꾸며 성장했다.

다들 기차를 타고 도시로 나갔고, 타향살이에 기차는 어머니와 고향을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였다.  

‘삶은 계란’이라는 유머도 ‘이별의 부산정거장’, ‘남행열차’, ‘은하철도 999’, ‘설국열차’, ‘콰이강의 다리’ 역시 기차가 낳은 문화유산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랐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산업화 민주화를 일구어냈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자라서 지구촌을 들썩이는 K팝과 한류의 전도사가 되었다.

이제 기찻길 옆에는 오막살이가 없다. 경부선이 지나가던 한밭과 달구벌이 대전광역시와 대구광역시로 우뚝 섰듯이 기차는 도시 발전의 키워드였다.

기차가 그대를 부른다. 기차를 타고 멋진 여행 하라고.

/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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