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의 가을
가난한 자의 가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10.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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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부쩍 차가와진 가을 바람은 문틈으로만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보다.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고 들어오기도 하니 말이다. 바람은 차고 낙엽은 지고, 가을 풍광은 쓸쓸하기 마련인데 여기에 가난과 외로움이 겹치면 그 쓸쓸함은 배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쌀쌀한 가을 날씨보다 차가운 것은 냉랭한 사람의 심사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맹교(孟郊)는 쓸쓸한 가을 저녁의 서글픔을 톡톡히 맛보았다.



가을 저녁 가난하게 살던 때를 술회하다(秋夕貧居述懷)


臥冷無遠夢(와냉무원몽) : 차가운 방에 누워 먼 고향 꿈도 못꾸고

聽秋酸別情(청추산별정) : 가을 소리 들으니 이별의 정이 괴로워라

高枝低枝風(고지저지풍) : 높고 낮은 가지에 바람이 일어

千葉萬葉聲(천엽만엽성) : 온갖 나뭇잎 소리 들려온다

淺井不供飮(천정불공음) : 얕은 우물이라 마실 물도 못 퍼고

瘦田長廢耕(수전장폐경) : 척박한 땅이라 오래도록 경작하지도 않았다

今交非古交(금교비고교) : 요즘의 교제는 옛날의 교제와 달라

貧語聞皆輕(빈어문개경) : 가난한 사람의 말은 모두가 가벼이 듣는다네




가을이 되어 날씨가 차가와지면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저절로 움츠려들기 마련이다. 더구나 가족과 떨어져 외딴 곳에서 홀로 사는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낮은 해가 있어서 아직 더위가 남아 있지만, 밤이 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난방 시설이 없는 외딴 집의 방은 밤이 되면, 사방으로 냉기가 올라와서 제법 추워진다. 이렇게 추운 방에 가족도 없이 홀로 있다 보면 잠이 제대로 올 리가 없다. 잠을 못 자니 꿈을 꿀 수 없고, 그래서 먼 곳에 있는 고향을 꿈속에서나마 볼 수가 없다.

몸은 춥고 마음은 외롭고, 참으로 가을 날씨만큼이나 쓸쓸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추운 방에서 잠 못 들고 있는 시인의 귀에 문 밖에서 나는 가을의 소리들이 들려오고, 이로 말미암아 이별의 비통한 정이 더욱 쓰라리게 되살아난다.

문 밖 나뭇가지는 높고 낮고를 가리지 않고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고 있고, 낙엽이라는 낙엽에서는 모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산하기 그지없는 가을 저녁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을 애처롭게 하는 것은 이러한 스산함만이 아니었다. 궁핍한 생활 형편마저 더해져 시인의 처량한 심사는 극에 달하게 된 것이다. 우물은 얕아서 물조차 제대로 길을 수도 없고, 밭이라고 있는 것은 몹시 척박하여 아예 경작을 포기하였으니, 시인의 궁핍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가을 저녁의 스산함, 생활의 궁핍함, 여기에 가난한 사람의 말은 가벼이 여기는 야박한 세태까지, 시인의 가을 저녁은 참으로 쓸쓸하기만 하다.

가을이 되면 차가와진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쓸쓸해지기 쉽다. 가족도 없이 궁핍하게 그리고 세상의 외면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라면 두 말할 것도 없이 더 쓸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을에 느끼는 쓸쓸함을 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쓸쓸함을 즐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가을의 스산한 정취는 뒤집어 생각하면 대단히 로맨틱하다. 지는 낙엽에서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나면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봄 여름에 잊고 살았던 고향과 가족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는 세태를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세속적 가치를 벗어나 사는 삶의 기회를 얻은 것은 부자로 사는 것 이상으로 행운이 아니겠는가?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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