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 벌스데이
하피 벌스데이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10.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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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하피 벌스데이 투 유/ 하피 벌스데이 투 유/ 하피 벌스데이 디얼 마이 그랜마/ 하피 벌스데이 투 유” 어설픈 발음으로 조심스레 노래한다.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두 손을 모아 하트를 그린다.

두 손녀의 생일 축하 노래가 카톡으로 스마트폰에 동영상으로 떴다. 큰 손녀는 앞니가 빠져 미운 일곱살의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난 연신 화살표를 눌러 다시 보기를 계속한다.

며칠 전에 생일이 지났다. 전날 남편은 생일을 잊었는지 저녁때가 되어도 케이크 살 생각을 않는다. 할 수 없이 저녁에 성가 연습 가는 승용차 안에서 내일이 어떤 날인지 확인했다. 남편은 깜박한 듯했다. 얼른 미안하다고 말한다. 연습 끝나고 오는 길에 살까. 10시가 넘으면 상점이 문을 닫을 텐데. 내가 제안했다. 연습 전까지 남는 시간에 교회 옆 마트에 가서 구입하겠노라고 했다. 남편에게 커피까지 구입해 오라는 부탁까지 했다.

마트 제과점 앞에서 케이크를 고르며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해까지는 둘째가 같은 청주에 살아 케이크는 늘 준비하였다. 첫째는 타국에 살고, 막내는 운항승무원으로 근무하니 시간이 여의치 않다. 지난 3월 둘째네 가족이 유학을 떠나고, 법정 노인 대열에 접어든 우리 부부와 90세인 시어머니 셋이서 사는 초고령 가정이 된 셈이다. 생각하니 씁쓸하다.

결혼했을 때 몇 년은 남편과 시어머니도 내 생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더 신기한 것은 시어머니는 남편 생일은 모 심을 때라면서 음력 4월 29일 날짜까지 기억했다. 매우 서운했다. 내가 생활하던 친정과는 달랐다. 친정어머니는 추석이 지나고 생일이 되면 꼭 풋콩을 넣은 햅쌀밥과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어머니가 소박하게 차려주던 생일상은 잊히질 않는다. 따끈한 사랑이 봉긋한 사발에 가득 담긴 모습까지.

그 이후에는 달력에다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내 생일이라고 큼직하게 써 놓았다. 그리고 관찰했다. 그래도 별 반응이 없다. 자꾸 잊는 듯했다. 하긴 자기 생일도 잊고 사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한 해는 속상해서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그래도 모른다. 그날 저녁을 먹으며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말을 했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를 한 셈이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생일을 기억해 준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만 마음 쓰면 되는 것을 하지 못하니 그것이 여자와 다른가 보다. 그렇다고 남편이 나를 미워하거나 무관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편의 성향이기 때문에 이제는 모두 초월하고 산다. 내가 이해를 하지 않으면 누가 이해를 한단 말인가.

생일날 남편과 둘이 케이크에 불을 켰다. 두 노인이 앉아 생일 노래를 부른 후 촛불을 끄고 손뼉을 쳐서 축하를 했다. 조금은 쑥스럽고 덤덤한 아침이었다. 더 한 것은 아는 지인 장례식장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이 나이에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고 편한 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이 들며 복잡한 것은 싫으니 그렇게 합리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던 차에 손녀딸의 동영상은 내 마음 허전한 곳을 꽉 채워준다. 어린 것이 벌써 커서 그동안 영어 배운 것을 생일 축하 노래로 실습을 한 셈이다. 이곳에 있을 때는 ‘해피 버스데이’로 노래했는데 ‘하피 벌스데이’로 노래한다. 6개월 동안 낯선 이국에서 적응하느라 매우 힘들었을 텐데 참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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