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첫날에
시월 첫날에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9.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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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10월 1일이다. 나흘간의 추석 연휴를 쏜살같이 밀어내고 개선장군처럼 시월이 왔다.

빠른 세월이 야속해 시월을 환영하는 현수막도 내걸지 못했지만, 해마다 시월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하다.

시월은 개천절과 한글날 같은 국가적 축일도 많거니와 수확의 달, 문화의 달, 독서의 달, 단풍의 달, 행락의 달, 축제의 달, 천고마비의 달 등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참으로 멋진 달이다.

무엇보다 파란 가을 하늘과 청량한 가을바람, 쾌적한 날씨가 살맛 나게 한다.

온 누리에 오곡백과가 풍성하니 세상인심이 넉넉해져, 사람들은 저마다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고 음악가가 되어 자연과 인생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노래한다.

미당 서정주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라고 시월에 피는 국화를 보며 절창을 빚었다.

김동규가 불러 히트시킨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시월의 주제곡이 되다시피 한 이용의 ‘잊혀진 계절’도 이맘때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 /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 /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 /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둘 다 시월을 노래했지만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만남의 기쁨을, ‘잊혀진 계절’은 이별의 슬픔을 그렸다.

이처럼 시월은 만남과 이별, 보람과 후회가 교차하는 이중주의 달이다. 인연을 소중하게 가꾼 이들을 만남의 축복을 이야기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이별의 슬픔을 곱씹을 것이다.

또한, 봄부터 여름까지 열심히 일한 이들은 보람이라는 결실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후회라는 쭉정이를 손에 쥘 것이기 때문이다.

시월은 가을의 중간 달인 중추가절(仲秋佳節)이자, 일 년 중 4/4분기가 시작되는 첫 달이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는 결실의 달인 동시에 미래를 위한 비움과 성찰의 달이기도 하다.

90세 인생이라면 60대 중반에 해당하는 달이고, 인생 2모작이 착근하는 시기다.

그러므로 은퇴 후를 대비해 놓고 자식까지 출가시킨 이는 홀가분하게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는 암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무튼, 시월이다.

2모작의 씨앗은 잘 뿌렸는데 몸이 여러 군데 고장 나 있고 마음도 몹시 무겁다. 충전하고, 힐링할 때가 된 것이다.

하여 이번 시월엔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곱게 피어 있는 조용한 산사로 가려 한다.

그곳에서 귀뚜라미 소리와 뭉게구름을 벗하며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산책도 하며 한동안 유유자적할 것이다.

세파에 찌든 시름과 욕심 모두 던져버리고, 참회의 삼천 배를 올린 후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돌아오리라.

그대에게 이른다.

그대는 이 좋은 시월에 ‘잊혀진 계절’을 읊조리는 상실자가 되지 말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을 구가하는 주인공이 되라.

잘 익은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단 사과나무처럼 많은 결실을 맺기를 스치는 가을바람에도 빌고, 파란 가을 하늘을 우러러 빌고 또 빌겠다.

북녘으로 날아갔던 기러기가 돌아오는 시월이다.

우리도 함께 본성으로 돌아가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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