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꿔주는 선물
삶을 가꿔주는 선물
  • 임성재 <칼럼니스트·시민기자>
  • 승인 2015.09.2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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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호주에 사시는 이모님 부부가 오셔서 추석을 함께 보냈다. 두 분은 내게 참 특별한 분들이다. 이모부가 삶의 멘토 같은 분이셨다면 이모는 내게 멋을 알게 해주신 분이다.

이모부는 지방대학을 나와 농촌진흥원에 다니는 공무원이셨다. 그런데 월남전이 터지자 국내 신문사의 카메라 종군기자를 지원하여 월남전 취재에 나섰다.

사선을 넘나드는 활약으로 영국 통신사에 스카우트된 후에는 평생을 외국 통신사와 방송국에서 카메라 기자로 활동하였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일본 등 동남아를 누비며 활동하는 이모부는 어릴 적 나의 우상이었다.

이모부가 찍은 생생한 전투 장면과 전쟁터에서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종군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비록 종군기자는 되지 못했지만 30여 년간 방송 일에 종사한 것은 그 때 품었던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끔 대학에 특강을 가면 학생들에게 이모부의 인생스토리를 들려주며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강조하곤 한다.

이모는 소도시에 사는 우리 가족을 대전으로 이사하게 한 분이다. 당시 중학교 영어 선생이셨던 이모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는 못가더라도 큰 도시로 나오라고 부모님을 종용하셔서 내가 6학년 때 우리는 대전으로 이사하였다.

촌티 줄줄 흐르던 내가 소위 일류중학교라는 곳에 합격하자 이모는 시계와 가죽구두, 그리고 만년필을 선물해 주셨다.

그 시절 입학생 480명 가운데 시계를 차고 구두를 신은 아이는 극소수였고, 만년필을 가진 사람은 내가 유일했던 것 같다.

까만 광목으로 만든 교복을 입던 시절, 날렵하고 세련된 손목시계를 차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구두가 낡아지고 시계가 대중화되는데 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적어도 학교에서는 멋의 상징이었다.

그때부터 옷을 깔끔하게 입으려는 습관도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 같다.

시계와 구두가 대중화의 그늘에 사라진 물질의 상징이었다면 만년필은 오랜 시간 동안 감히 넘보는 사람이 없는 문화였다.

교복과 책가방에 잉크 물을 들이며 펜글씨를 쓰던 시절에 만년필의 고고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만년필이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시계나 구두와 달리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희귀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이때부터 만년필은 나의 유일한 사치품이 되었다. 능력이 허락하는 한 좋은 만년필을 샀고,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는 스스로 기념하거나 자축하는 뜻에서도 만년필을 구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려줄 만큼 호사스런 만년필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만년필은 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특별한 가치를 더하게 해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이모가 주신 선물의 의미를 젊은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구두는 낡아서 버려졌고, 만년필은 언젠지도 모를 때 잃어버렸다. 시계는 군복무기간 내내 흰 붕대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있었던 기억 이후로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랬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그 선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 왔다. 주신 분은 기억도 못 하시지만 그 선물들은 나의 삶에 하나씩 의미를 만들어 주었고 삶을 좀 더 멋스럽게 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선물을 한 적이 있을까? 누군가의 삶을 향기롭게 한 적이 있을까?

추석 연휴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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