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그 비릿한 맛
사마귀, 그 비릿한 맛
  • 신준수 <시인·충북숲해설가협회>
  • 승인 2015.09.29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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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 옛말>

여름의 끝, 손바닥만한 환삼덩굴 위 사마귀 한 쌍이 무아경의 천(川)을 건너고 있습니다. 역삼각형 얼굴과 외계인처럼 툭 튀어나온 눈에 이리저리 휙휙 돌아가는 머리에 질겁하게 하지만 사마귀는 내게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사마귀에게 물리면 손등에 사마귀 혹이 돋는다’, ‘사마귀가 오줌을 싸면 오줌 묻은 곳에 ‘사마귀’가 생긴다’, ‘사마귀를 잡아 피부에 돋은 사마귀를 먹게 하면 없어진다’. 사마귀가 떨어진다는 말에 사마귀를 잡아 피부에 돋은 사마귀에 대고 먹으라고, 뜯어먹으라고 윽박지르고 어르고 하던 기억들이 메아리처럼 흩어집니다.

오랜 세월 자연에 깃들어 살아온 할머니는 보잘 것 없는 동·식물을 이용해 각종 질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런 민간요법은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식물은 토양에서 필수 영양분을 취하여 그것을 유용한 형태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땅의 영양소를 그대로 흡수하게 되는 식물은 자연 저장고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자연식품은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수영양소가 될 뿐 아니라 의약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편도선을 달고 살았습니다. 나는 편도가 부울 때마다 “할머니 멸치가루 넣어주세요” 하고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찝찔하고 미끈한 가루를 밀집 데 궁에 찍어 입을 크게 벌리게 하고 후~하고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멸치가루라 했습니다. 멸치맛이 났고, 푸른 바다 냄새도 나는 듯했습니다. 때로는 입 천정에 붙은 찝찔한 비늘 같은 것을 혀로 긁어모아 입안에서 우물거리다 삼키곤 했습니다. 가루를 불어 넣고 한나절쯤 지나면 목의 통증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찝찔한 가루를 몇 번 더 불어 넣곤 했습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그때 편도가 부울 때마다 할머니가 불어 넣어주던 가루는 멸치가루가 아니라 사마귀가루였습니다. 사마귀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할 때쯤 사마귀 몇 마리를 잡아 바싹 말린 후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두고 가정상비약으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겨울철 편도선염을 치료할 때는 사마귀 알집을 냄비에 넣고 새까맣게 태워서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 볏짚에 찍어 편도선 부위에 ‘훅’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입을 다물고 얼마쯤 있다 물로 입안을 헹구어냈습니다. 과자부스러기처럼 머들머들했고, 고소한 맛도 났던 것 같습니다. 찬바람에 입술이 트거나 몸에 종기가 날 때도 알집을 태워 들기름과 섞어 상처에 발라주셨습니다. 사마귀, 사마귀 알집은 고라데이 아이들에게 친근했습니다. 학교를 오가며 알집을 보면 보는 대로 따서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기도 했습니다. 수 백 개의 노란 알이 입안에서 터지는 느낌은 12월 1월까지는 아무런 감각도 느낌도 없습니다. 설 명절이 지나고 우수 경칩이 지나면서는 질겅질겅 씹을 때의 비릿한 맛이 달랐습니다. 알 색깔도 제법 노랗고 크기도 탱글탱글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사마귀들이 우르르 불협화음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알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비릿한 맛도 깊어졌습니다. 이쯤 되면 고라데이 아이들도 사마귀 알집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계절을 횡단합니다.

대다수의 신약개발이 동·식물에서 시작됩니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은 과학입니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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