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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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9.23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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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 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으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무심코 새끼거미를 문밖으로 쓸어냈는데, 큰 거미가 그 자리에서 서성대고, 다시 그 자리에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좁쌀만 한 새끼거미가 꼬물거립니다. 어미를 찾아, 새끼를 찾아 한 자리를 맴도는 거미가족들. 영락없는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읽어보는 백석의 시는 그래서 더 아릿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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