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공천만 받으면 돼
우린 공천만 받으면 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5.09.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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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이재경 국장<천안>

#1993년, 지금 세계 유기농엑스포가 열리는 괴산군의회의 해외 연수에 취재차 동행한 적이 있었다.

방문 장소는 일본 이바라키현의 사토미촌(村). 인구 5000여 명의 전형적인 시골 소읍으로 급속한 고령화 탓에 60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5박6일간의 일정이었는데 새삼 기억이 새롭다. 비행기로 동경에 도착해 차를 타고 꽤 오랜 시간을 달려 현지에 도착했는데 쉴 틈도 없이 바로 현지 행정청에 들러 방문 행사를 하고서야 저녁 늦게 숙소에 들어갔다.

이튿날부터의 공식 일정은 강행군이었다. 작은 농촌 마을임에도 전국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명성을 쌓은 유기농 아이스크림 공장 탐방. 백화점에 납품되고 있는 장아찌와 각종 공예품 등을 생산하는 고령자 작업센터. 주민들이 정부 기금을 받아 운영하는 기숙형 집단 농원. 여기에다 시골 교육현장 견학을 위해 현지 초·중학교까지 두루 둘러보는 빠듯한 일정이 나흘간 계속됐다.

일행은 오후 밤늦게 시작되는 마을 반상회도 참관했다. 반상회는 마을 공회당에서 열렸는데 집행부 공무원들이 대거 참석해 각자 고유의 업무별로 주민들의 민원을 청취하고 즉석에서 답을 해주고 해법을 찾아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아주 깊숙한 시골 마을에서의 연수였으니 숙소는 물론 호텔일 리가 없었다. 아마 농장 내 집단 합숙소였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공중목욕탕을 이용했었다. 이 연수 프로그램은 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인 강형기 교수가 짰다. 귀국을 하루 앞두고 후지산 중턱에 오른 것 말고는, 그야말로 오로지 ‘공부’가 목적이었던 해외 연수였다.



#천안시의회가 이달 말부터 6000만원짜리 관광성 해외 연수에 나선다. 2개 조로 나뉘어 한 팀은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다른 한 팀은 유럽 3개국을 돌아볼 예정이다. 그런데 이 코스가 모두 현재 인터넷에서 판매되고 있는 관광 상품이다.

캐나다 코스는 국내 대다수 유명 여행사들이 판매 중인 상품과 똑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프랑스와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3개국을 도는 일정 역시 거의 똑같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이런 시민 혈세 축내는 ‘관광 여행’이 버젓이 심사를 통과했느냐는 점이다. 천안시의회 규칙에 따르면 6인 이상 의원들의 해외 연수는 반드시 ‘공무 국외 출장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심사위는 공정성을 위해 반드시 민간 심사위원들이 반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심사 기준도 당연히 있다. 단순 시찰이나 견학을 목적으로 하는 국외 출장은 갈 수 없다.

하지만, 심사위원회는 어찌 된 일인지 지난 10일 시의원들의 관광성 해외 연수를 만장일치로 의결 통과시켰다. 단순 견학과 시찰이 고작이며, 대부분 일정이 관광인 연수를 허락해 준 것이다.

심사에 참석한 이는 시의원 2명과 대학교수와 시민단체 대표 등 민간 위원 3명. 시의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간 위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이들은 시민 세금으로 1인당 7만 원씩의 참석 수당까지 받았다. 그러면서 심사 기준까지 무시하며 ‘혈세 해외 관광’을 용인했다.

어쨌든, 천안시의원들은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우린 유권자 따윈 무서워하지 않아. 국회의원에게 잘 보여서 공천만 받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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