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대한 효(孝)보다 더 중요한 것은(4)
부모에 대한 효(孝)보다 더 중요한 것은(4)
  • 김영미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 승인 2015.09.2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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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김영미 <문화관광 해설사·수필가>

충렬사의 공식 명칭은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이다.


충렬사라는 사당이 전국적으로 많아서인지 이곳의 충렬사는 앞에 배향된 인물이 동래부사 송상현임을 밝히고 있다. 충렬묘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된 본래의 사당이고, 서편에 있는 충렬사는 2001년 청주시에서 새로 지은 사당이다.

천곡기념관 안에는 동래 남문에서 묘를 이장할 때 혼백을 모셔온 가마(요여)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동래부순절도가 있는데 이 그림은 1658년(효종9년)에 동래부사 민정중이 임진왜란 당시의 동래성 전투 상황을 잘 아는 노인의 말을 토대로 그린 그림이다.

송상현 종가에 전해져 내려오던 것인데 1978년 부산 충렬사에 위탁 전시하였다가, 2000년에 반환받아 현재는 청주 고인쇄박물관 수장고에 있고, 천곡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는 것은 영인본이다.

또 교지(敎旨)가 전시되어 있는데 교지란 조선 국왕이 문무 4품 이상 관리에게 준 문서로 관직, 품계, 시호, 자격 등을 말하며 본래 왕지(王旨)라 하여 왕의 뜻을 받들어 전하는 문서를 말한다.

3점 모두 후대의 추증(관료의 사후에 직급을 높이는 일) 교지로서 1741년(영조17년)에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추증 교지와 함께, 그의 부인 이씨에게 정경부인의 품계를 추증한 교지가 있고, 이 밖에 충렬공이란 시호를 추증하는 교지 등 3점이 전시되어 있다.

혈선발은 송상현이 1592년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하기 직전 부채에 “孤城月暈 列鎭高枕 君臣義重 父子恩輕”(고성월훈 열진고침 군신의중 부자은경)이라는 혈서를 써서 부친에게 보낸 혈선시(血扇詩)에 붙인 발문이다.

송상현의 혈서가 있는 부채라 하여 혈선이라 부른다. 본래의 혈선은 현존하지 않고 후대에 혈선을 모방하여 그린 혈선도가 전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천곡수필집이 전시되어 있는데 종가에 전해오는 송상현의 유필로 추정되는 필사본이다.

개인적인 처신과 정치 및 학문에 관한 사항들을 당시 여러 사람에게 묻고 답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1592년 4월 13일 왜적이 부산 앞바다에 침입한 지 이틀 후인 15일에 동래성을 포위한 적군을 맞이하여 하루도 버티지 못한 채 성은 함락되었고 죽음을 당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송상현의 충의 정신, 봉건시대였던 당시 충성은 임금에 대한 것이어서 군신의 의를 부모의 은혜에 앞세우고 죽음보다 중하게 여겼던 시대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을 실천하는 것, 그것은 지금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숭고한 정신이 아닐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지표를 삼는 것이 역사적 의의라고 한다면 평화가 지속할 때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안보를 더 철저히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임진왜란 당시도 200여 년간 평화가 지속되어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 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결국, 역사 속에 답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말 속에는 아마도 역사를 모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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