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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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운우 <청주시 서원구 농축산경제과장>
  • 승인 2015.09.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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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이운우 <청주시 서원구 농축산경제과장>

아침 일찍 깨어, 엊저녁 숙취 때문일까? 머리가 무겁다. 아침바람을 쐬면 회복되려나 하고 아내를 불렀다 ‘오랜만에 산책 좀 할까’ 평소차림의 반바지에 반소매 티를 입고 나섰다. 아내가 ‘추울걸’이라고 말했지만, ‘괜찮겠지 아직 여름이 안 지났는데…’라며 바깥에 나오자마자 찬바람이 온몸에 와 부딪친다. “헉! 장난이 아니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지났나?”하며 뒤돌아 들어왔다. 아내가 ‘거봐’ 한다. 역시 아내 말 들어서 손해 보는 것이 없다고 누군가에게 들은 기억이 새롭다.

한낮에는 덥기에 아직은 여름이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가을이 턱밑까지 밀려와 있음을 이제야 실감한다. 찬바람이 불면 한해가 끝나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으로 쌀쌀한 바람만큼이나 마음도 덩달아 쓸쓸해진다. 나이 먹어가는 것이 쓸쓸한 일일까? 나이가 쌓여간다고 하지 않고 ‘나이 먹는다’ 또는 ‘나이 든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유가 있는 걸까? 쌓여간다는 것이 더 부담스러워서 ‘먹어 치워 없앤다.’란 뜻으로 ‘먹는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한때 얼른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돼 모든 걸 내 맘대로 했으면 하는 어린 때가 있었는데 이젠 나이가 쌓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때가 된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리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지만 여행의 계절이기도 하다. 울긋불긋 오색 단풍든 산이나 반짝이는 파도를 바라볼 수 있는 바닷가, 유명한 유적지 모두가 좋겠지만 가을여행은 낙엽이 싸락눈처럼 나풀나풀 떨어지는 고즈넉한 산사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걷는 여행이 제 맛이겠다. 특히 옛날의 추억이 담긴 곳을 다시 가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아빠 생일날 여행 가자고, 어디 가고 싶으냐고 묻기에 서슴지 않고 설악산이라고 했다. 설악산이 불현듯 가보고 싶은 것은 신혼여행지라서 그때를 회상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다.

그때는 기쁨보다는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며 ‘내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울산바위가 바라다보이는 넓은 광장에서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게도 식구는 한복을 입고 신혼여행왔노라 자랑하는 것처럼 수백 명의 수학여행 온 학생들 앞을 지나는 데 난데없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터졌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우리 커플을 향한 축하의 박수와 환호였다. 식구는 창피하다고 얼굴이 빨개졌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이 박수로 축하를 해주는 데 우리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것임을 예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기분이 좋았던 추억이다, 그 자리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우리 결혼의 결실인 아들, 딸을 앞세우고 그 자리를 33년 만에 다시 찾아 개선장군인 양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내가 지나는 자리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 길인지도 한번 되돌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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