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의 법칙
관성의 법칙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5.09.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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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용례 <수필가>

벌써 5개월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길 설고 집이 낯설다. 밖에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가 이전에 살던 집이 있는 내수로 향하고 있다. 습관이 참 무서운 것이다. 김유신 장군은 기생집으로 가는 말의 목을 베었다는데 나는 차의 핸들을 꺾을 수도 없고, 그저 우습다. 하긴 30여 년을 매일 다니던 길을 하루아침에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가야 하니 찬들 쉬울까. 어이없게도 김유신 장군처럼 나도 차를 탓해본다. 아무리 주인이 가는 데로 간다지만 기계도 가던 방향으로 길들였으리라.

한 번 습관이 들면 버리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심하다. 생활이나 사람을 사귐도 그렇지만 성격도 또한 그러하다. 변화가 두렵고 상대방이 아주 심하게 잘 못하지 않으면 관계를 계속유지 하려고 한다.

남편이 33년 출퇴근하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다.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하던 습관 때문에 어떤 날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 출근준비를 서두르다가 나의 제지를 받고 행동을 멈추며 한숨을 내 쉴 때가 잦았다. 무의식중에 의식이 도사리는 것처럼 어쩌면 남편은 계속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관성의 법칙은 오래전 물리학자 뉴턴이 발견한 물리현상이다. 정지해 있던 버스가 출발하면 승객이 뒤로 밀린다. (정지관성) 달리던 버스가 정지하면 승객이 앞으로 쏠린다. (운동관성) 세상은 정지관성과 운동관성이 적당히 융합되어야 한다. 한 가지 관성만 지속한다면 온전한 세상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관성, 물체가 외부의 작용을 받지 아니한, 정지 또는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나는 힘이라고 하고 싶다.

그중에 어떤 힘이 가장 클까. 부모의 가장 큰 에너지는 자식을 향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초능력의 힘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큰 에너지는 자기의 꿈을 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꿈이 타의에 의해 포기해야만 했을 때 억울해서 병이 된다. 그만큼 강한 힘이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꺾였을 때 그 처참한 좌절을 누구나 몇 번은 경험했으리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많은 일과 부딪힌다. 내 의지대로 만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을 이제는 받아들며 살아간다. 주변 사람에 의해서 멈춤을 당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사귀는 일도 먹는 음식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시도를 잘하지 않는다. 가던 길로 계속 가려는 성질이 강한 사람인가 보다. 하물며 30년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방향을 바꿔 다른 집으로 가려니 어색한 것이 당연한 일이다.

두 아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는 하루에 서너 번씩 같은 길로 다녔으니 그동안 수천 번 오고 가던 길, 나는 물론이거니와 무생물인 차도 이 길에 익숙해졌으리라. 결혼하여 수름재를 넘는 내 심정은 낯설고 어렵고 두려웠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곳을 떠나왔다는 것이 지금도 서운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내게는 아직도 새 신발을 신고 불편하고 어색한 아니 낯선 도시에서 헤매는 느낌보다 강한 어색함이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왜 이쪽으로 가요?” 하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나는 “관성의 법칙이지요” 라고 궁색한 변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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