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연비어약(鳶飛魚躍)
분노와 연비어약(鳶飛魚躍)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5.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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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최근 가장 많이 경험하는 감정은 무엇입니까?”

어느 심리조사에 의하면 그 감정은 ‘분노(화)’와 ‘좌절’이었다. 영화 <베테랑>이 막장 재벌2세를 처벌하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천만이상의 관객을 돌파한 것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분노의 공감 그리고 분노의 투사가 분명 한 몫 했을 것이다. 

분노는 자신이 모욕된다고 지각할 때, 타인에게 거부당하거나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당할 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드러난다. 분노할 때 카테콜라민(Catecholamine)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는 심장혈관 등에 영향을 미쳐 협심증을 포함한 심근경색증은 5배, 뇌졸중은 4배나 더 초래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우리는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헝그리(hungry)시대’를 넘어 ‘부의 편중, 취업 난, 신분 고착화’ 등으로 인해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앵그리(angry)시대’에 살고 있다.

문인 김윤식은 분노를 군자의 분노와 소인배의 분노로 구분했다. 사소한 것을 두고 자기 뜻과 같지 못하다 하여 분노하는 것은 소인배의 처신으로 용기 없는 작은 분노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층간소음 갈등과 보복운전은 내 집과 내 차에서만큼은 갑이고 싶다는 좌절된 욕망이 분노의 원천이다. 소인배의 분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작은 일에 눈썹을 찌푸리고 눈알을 부라린다. 그러나 중대한 일이나 중대한 말을 마주치게 되면 기운이 빠지고 위세가 사라지며 머뭇머뭇 물러나는데 이들은 큰 용기가 없는 사람으로 혈기(血氣)에 의지해 분노를 표출한다. 

큰 용기가 있어 성내는 것은 군자의 분노이이다.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은 의리(義理)의 분노를 하는 사람으로 고대 중국의 순(舜) 임금이 분노하여 흉악한 4명의 권신 사흉(四凶)을 제거한 것, 공자가 분노해 간신의 우두머리 소정묘를 죽인 것, 예수가 분노해 예루살렘 성전 장사판을 둘러엎은 것, 안중근 장군이 분노의 총을 쏜 것, 4.19 혁명당시 독재를 향한 분노의 돌팔매질 등은 군자의 큰 분노이다. 군자의 분노는 천하를 흔들고 국가를 움직이며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 그 혜택을 민중에게 돌린다. 

시경(詩經)에 ‘연비려천 어약우연(鳶飛戾天 魚躍于淵)’이라는 말이 있다.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고기는 뛰어 연못에서 노는 모습으로 천지자연의 모든 것들이 도(道)에 합당한 자기 자리를 얻은 상태를 형상화한 말이다(송혁기의 ‘책상물림’ 인용). 즐겁고 행복하게 공부하며 지식과 인격을 쌓아갈 수 있는 학교가 학생이 날아올라야 할 하늘이고, 빈부귀천 없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우리가 헤엄치며 노닐어야 할 물이다. 분노는 그러한 하늘과 물을 보장받지 못하는데서 시작된다.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솔개의 날개가 꺾이고, 성실한 노력과 열정이 물 밖에 던져진 물고기의 몸부림으로 여겨지는 학교와 사회라면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송혁기 교수의 글을 인용하자면 모든 존재는 자기 자리가 있게 마련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지금 그 자리에서 본분에 충실 하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개개인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어야할 당위성이 있다. 그렇지 못할 때 누군가는 끝까지 비판하고 분노해 그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할 명분 또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마땅히 거닐고 놀아야 할 하늘과 연못이 어디이고 우리 사회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위에서 일어나는 ‘마땅한 군자의 분노’는 건강한 심리적 기제이며 역사적 당위이다.

오늘 새벽에도 깊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말과 행동이 잔잔하기를, 화내지 않기를 기원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좌절된 나의 시시한 욕망으로 사소한 일에도 화내는 나에게 시인 김수영은 “왜 왕궁의 음탕 대신 기름덩어리 갈비탕에만 분개하는갚라고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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