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버지
아빠와 아버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9.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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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며칠 전 뜬금없는 전화 한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냐고 묻는 전화였는데 평소 깊게 생각해본 화두가 아닌데다가 순간 몰려온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에 울컥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아빠란 말은 어렸을 때 부르는 아버지의 별칭이다. 대부분 철이 들고 나이가 차면 아버지, 아버님으로 고쳐 부르지만 아빠는 영혼의 언어이다. 유아가 제일 먼저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아빠인데도 아빠란 호칭의 유래와 어원에 대해선 그럴 것이라는 설만 있을 뿐 아직 명쾌하게 밝혀진 학설이 없다.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이라 훈민정음 창제 이후 발간된 여러 고전이나 판소리 등에서 아빠란 말이 나올 법도 한데도 흔적이 없으니 고증하기 어렵다.

필자가 어렸을 때 아빠라 부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60년 전만해도 널리 쓰이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 아빠가 엄마(어머니), 쉬(소변), 응가(대변), 어부바(등에 업거나 업히는)처럼 유아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 가장 발음하기 쉬운 자음이 ‘ㅁ’과 ‘ㅂ’이고, 발음하기 쉬운 모음이 ‘아’와 ‘어’이기 때문이다.

다물고 있던 입을 그냥 떼면 저절로 그런 소리가 나니까 말을 배우는 아기들에게는 어머니, 아버지보다 ‘엄마 아빠’란 말이 훨씬 하기 쉽다. 여기에 엄마 아빠라는 말을 빨리 듣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성화까지 더해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두 돌 지낸 손녀가 엄마 아빠 소리는 곧잘 해도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못하는 걸 보면 발음과 관련이 깊은 게 분명하다.

그런데 아빠란 말을 한국인들만 쓰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지구상의 다른 많은 종족들도 아버지를 우리와 흡사한 발음의 아빠라 부른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남부지역의 아빠, 헝가리 마쟈르족의 아빠, 인도 남동부의 타밀족의 아빠, 아라비아어의 아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신묘한 그 무엇이 있음이다.

아무튼 부모는 태어난 아이로부터 최초로 엄마 아빠라고 부름 받을 때 감격한다. 부모로서의 양육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며 자식과 부모 간의 언어적 소통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아빠와 아버지는 참으로 신성한 말이고 거룩한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 아빠란 말이 남용되기 시작했다.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몰지각한 아낙들의 잘못된 호칭이 그것이다. 어린 자녀들이 부르는 ‘아빠’라는 호칭을 개념 없이 함부로 쓰는 작태는 바로잡아야 한다. 

아버지는 한 여자의 남편이며, 자녀들의 우상이며, 집안의 가장이다. 어린 자식에게는 산이고 바다였고, 아내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가족 앞에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할 수 없고, 약해도 강한 척 해야 하는 고독한 존재가 바로 아버지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늘 알량한 체면과 권위를 먹고 살았다.

요즘 그 아버지들이 수난을 당하고 산다. 가장의 권위는 실종된 지 오래고, 체면마저 종이짝처럼 구겨졌다. 

이른바 여성상위시대, 모계사회로의 전이가 아버지들을 그렇게 초라한 군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올인한 아버지들의 신세가 참으로 가엾다.

‘아빠의 청춘’이라는 대중가요가 시대를 풍미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영감인데/ 노랑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눈물겹지만 이 세상 아빠들은 모두들 그렇게 살았고, 오늘도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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