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야생(3)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3)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5.09.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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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반영호 <시인>

누렁이가 참새를 잡았습니다. 흘린 모이를 주워 먹으러 온 참새를 덮친 것이죠. 전에도 종종 있던 일로 많이 잡을 때는 다섯 마리까지 잡았습니다. 잡은 참새들을 보란 듯이 현관문 앞에 모아놓고 으스대며 자랑하는 겁니다. 누렁이가 사냥한 참새는 구워 먹습니다. 참새구이 맛은 천하 일미죠. 참새고기 한 점과 소고기 한 근을 바꾸지 않는다는 옛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잡아놓은 참새가 아직 살아있는 거예요. 사실 겉으로만 사납게 보이지 진돗개는 겁 많은 순둥이입니다. 마음이 여려 작은 곤충도 잡아놓고는 죽이지 못한다니까요. 그저 장난치며 가지고 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참새도 설 죽인 거지요. 누렁이가 더 괴롭히기 전에 얼른 주워들었지만 어떻게 처리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새장이 꽉 찼거든요. 얼떨결에 십자매가 참새목이라는 게 생각나 십자매 새장에 넣었어요.

십자매는 한자로 ‘十姉妹’라 쓰는데 이 새의 성질이 아주 온순하여 많은 새를 한 새장에서 길러도 사이좋게 지내서 이렇게 부르는데 십자매는 새끼를 아주 잘 기릅니다. 열 자매 마다치 않고 잘 어울린다는 거지요. 재미있는 특징이 있는데 금화조, 호금조 등 다른 사육조의 알을 품는 대리모 역할도 합니다. 몇몇 핀치류 새들은 자기들이 낳은 알을 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이럴 때 십자매 알과 같이 놓아두면 다른 새의 알도 잘 품어 부화시킬 뿐 아니라 자랄 때까지 돌봐주기까지 한답니다. 이 성격 좋은 십자매가 난리가 났습니다. 참새를 들이자 공격을 해대는 거예요. 참새가 십자매보다 훨씬 큰데도 물러서지 않고 맹렬히 덤벼들어 쪼아댔습니다. 놀란 암컷은 둥지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교란시키고 공격은 수컷이 했어요. 평소 얌전하던 십자매였는데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어요.

수컷십자매의 매서운 공격은 침입자를 막는 방어의 의미도 있겠지만 한편 자기 짝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로 보였습니다. 사력을 다한 사투는 가히 놀라웠고 저것이 열 자매 마다치 않고 받아들인다는 십자매일까도 의심이 되었습니다. 배가 고팠는지 참새는 아예 모이통에 들어가 먹어댑니다. 그리고 모이통에서 나오지도 않는 거예요. 모이통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배를 채우려는 일차적인 방법 외에 수컷 십자매의 맹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신처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장 안의 유일한 시설물인 둥지와 먹이통. 둥지는 십자매가 지키고 있고 먹이통은 참새가 점령하여 각자의 거점이 된 것이죠. 배가 고파진 십자매가 먹이통을 향해 공격하면 참새는 둥지로 자리를 옮깁니다. 배를 채우고 나면 십자매들은 다시 둥지 탈환작전에 나섭니다. 이런 식의 결투는 종일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낯선 침입자가 밀렸으나 점차 기력을 회복하고 전장상황에 익숙해진 참새가 새장의 점유율을 상당히 넓히고 점차 군림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죠. 꼭 그 짝이었어요. 터줏대감 십자매가 나그네 참새에게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어요.

일본 대표팀이 2015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미국 대표 펜실베이니아 팀에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어요. 일본 대표팀은 미국 사우스 윌리엄포트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서 경기 초반 대량실점하며 2-10으로 뒤졌으나 니시지마 마사후지가 4안타 6타점을 기록하는 등 타선의 대폭발에 힘입어 18-11로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일본 대표팀은 펜실베이니아 대표팀을 맞아 2점을 먼저 따고도 10점을 내주며 흔들렸었어요. 그러나 일본은 이후 가와시마 노부유키가 마운드를 이어받아 5이닝 1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죠. 이 시합을 지켜보면서 2차 세계대전 시 일본의 진주만 습격을 떠오기도 했어요. 아무튼, 의기양양했던 미국은 제집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에도 완패한 거죠.

이제 야생 참새를 날려 보내야겠습니다. 쩔쩔매는 십자매가 불상도 하지만 진돗개에게 물려 다쳤던 곳이 완쾌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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