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과 비판에 대하여(2)
비난과 비판에 대하여(2)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9.09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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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비난(非難)과 비판(批判)은 이란성 쌍둥이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게 이 녀석들이다.

한생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과 언행들로 비난받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또한, 살면서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남을 비판하기도 하고, 남에게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비난과 비판에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비난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또는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음이다.

유의어로 인신공격, 지탄, 책망 등이 있다.

이처럼 비난이란 놈은 참으로 고약한 녀석이다.

비난은 굴리면 굴릴수록 눈덩이처럼 커져 개인은 물론 조직과 사회를 피폐케 한다.

집단적 비난이나 선동적 다발적 비난은 인격적 살인까지 낳는 무서운 범죄이다.

비판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또는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이다.

유의어로 비평, 판단, 평 등이 있다. 이처럼 비판은 개인과 조직과 사회를 성숙하게 하고, 진화하게 하는 좋은 녀석이다.

이런 비판기능이 있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류문명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비난은 부정의 얼굴을 비판은 긍정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한 인간의 입과 글과 몸짓에서 나오는 비난과 비판의 결과가 이처럼 다르다. 비난은 감정에서 비판은 이성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면전에서는 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등 뒤에서 따발총을 발사한다.

그런 사람들은 향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사실 비난의 산실은 정치권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 대안 없는 비판은 비판의 탈을 쓴 비난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몰염치한 정치를 몰아내야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의 허물부터 돌아봐야 하는데, 저는 선이고 남은 악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저질인간들이 의외로 많다.

요즘 인터넷 사이버상의 얼굴 없는 비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른바 악성댓글들이 인격 살인을 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이르게 하니,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악성댓글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무튼, 상처주고 상처받는 비난과 절연해야 한다.

사람이 지위가 오르고 성공과 성취를 이루어 가면 갈수록 비난과 비판의 수위와 크기는 배가 된다.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의사표현을 하기 때문에 오는 비난과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아니 즐겨야 한다.

그래야, 진정 큰일을 할 수 있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다.

비난과 비판은 쾌감을 먹고산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존재감이 없는 자에게 비난과 비판의 화살은 날아오지 않는다. 쾌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비난과 비판에 주저앉는 자가 있는가 하면, 비난과 비판에 더 단단해지는 이가 있다.

그대는 어느 쪽인가?

다시 그대에게 묻는다.

주로 무대 뒤에 숨어서 비난만 하고 사는 사람인가, 무대 위에서 땀 흘리다가 비난받는 사람인가?

그대에게 무시로 비판을 해주는 이가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고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다.

살아있으므로 비난과 비판은 늘 그대 곁에 있다.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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