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
영이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9.0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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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영이가 감쪽같이 가을 속으로 사라졌다. 벌써 두 시간째 영이를 찾아 산속을 들길을 논길을 신작로를 헤집고 다녔다.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에 영이가 없어진 것이다. 영이가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현관문을 열어둔 채 잠이 든 것이다. 그런데 그 문을 통해 연기처럼 사라졌다. 처음에는 근처에 있으려니 생각했다. 뒤꼍을 돌아봤다. 안보였다. 집과 맞닿은 기슭을 올라가며 영이를 불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옆집 아줌마에게 물었다. 한 시간 전쯤에 윗마을 쪽으로 갔단다. 윗마을을 향해 영이를 부르며 개울가와 논과 밭을 살폈다.

팔 년이다. 영이와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 영이를 처음 봤을 때, 기형적으로 난 이 때문에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한 채 혀를 빼물고 있었다. 귀도 한쪽이 일그러져 있었다. 문에 끼인 상처라 했다. 게다가 젖꼭지의 수도 왼쪽과 오른쪽이 달랐다. 우리 집에 온 후로는 등에 혹이 나서 자라기 시작했다. 혹 때문에 눕는 것도 불편해하고 혹이 여기저기 쓸려서 진물도 났다. 그래서 제거수술도 한차례 했던 가녀린 영이다. 잘 먹지도 않아서 팔 년을 살았는데도 몸무게가 2킬로가 채 안 나갔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가고 애잔했다.

흰 눈이 창가에 흩날리던 어느 겨울날, 지인이 일주일만 맡아달라며 내게 가져온 강아지였다. 남자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이라 했다.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보기가 마음 아팠는지 내게 맡기고 간 지 어느덧 팔 년이 지났다. 그런데 영이가 그 애처로운 영이가 사라진 것이다. 윗마을을 다 뒤졌다. 보이지 않았다. 윗마을 사람들에게 영이를 보면 연락해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아랫마을 쪽으로 향했다.

저녁노을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작은 것이 혹시 개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풀숲을 잘못 들어 울창한 풀 속에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 하고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산길을 잘못 들어 그 작은 걸음으로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 속을 헤매는 것은 아닐까? 혹시 들짐승에게 해를 입는 것은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여린 것이 얼마나 힘들고 막막할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이장님 집으로 달려갔다. 마당에 들어섰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현관 앞 계단에 올라 큰소리로 외쳤다. “계세요? 계십니까? 이장님 계세요?” 한참을 소리쳐 부르자 방 안쪽에서 희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안녕하시냐는 인사도 잊은 채 대뜸 말을 한다. “방송 좀 해 주세요. 우리 개가 없어졌어요. 작아요. 1.9킬로에요. 요크셔테리아에요. 팔 년을 키운 거라 내 자식이나 똑같아요.”라고 쉼 없이 말하는데, 얼굴에 눈물이 범벅되고 근육이 실룩거린다. 이장님은 “돌아올거유~” 라는 말과 함께 방송을 해준다. 어느새 어둑어둑한 저녁이 마을로 소리 없이 내려왔다.

어둠이 밀려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언덕에 뭔가 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봉지 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이였다. 난 뛰어가 영이를 안았다. 어디에 갔다가 온 건지 온몸이 젖은 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젖은 영이를 따듯한 물로 씻겨주었다. 영이가 따듯한 방에서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니 안도감에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들었다. 같이 하는 날까지 세심하게 보살피리라. 조용히 영이의 옆에 몸을 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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