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야기
1970년대 이야기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9.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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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윤승범 <시인>

다들 어렵게 살 때였습니다. 

삼순구식은 겨우 면했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봉지쌀을 사먹고 새끼줄에 꿰인 연탄 낱장을 사서 하루하루를 살았던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보리고개만 없는 것도 감지덕지였고 다들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때 없이 출현하던 간첩, 간첩단, 간첩선, 북한군들의 남침 야욕만 없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북한의 소행은 항상 나라에 어떤 문제가 불거졌거나, 무엇인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거나, 아니면 국민들의 관심과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질 때면 어김없이 터져나왔습니다. 

정보에 닫힌 국민들은 곧 전쟁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위기 의식에 다들 한마음의 반공주의자가 되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김일성’이를 욕하고 했습니다. 신기했던 것이 그런 일련의 북한군의 준동은 꼭 정권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만 발각이 되고 행동을 하고, 그리고 날 것 같다는 전쟁은 여전히 그 기미만 보이고 그치고는 했습니다. 

당시 D신문에서는 백지로 된 기사가 보이기도 했고 심심치 않은 저항도 있었지만 결국은 무지막지한 유신의 칼날에 밥줄이 끊기고 말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사람은 신고를 당했고 낯선 동네로 여행을 다니면 언제 모르게 경찰서에 가서 신원 조회를 당했던 세월입니다. 

수상한 사람은 간첩으로 몰렸고 그 수상한 사람의 행적 중의 하나는 ‘현 정부에 불평불만이 많은 자’도 속해 있었습니다.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정부에 비판적이면 간첩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 말이 맞는 것이겠거니 여겼고 어디 눈 먼 간첩 하나 잘 걷어들려서 상금 두둑하게 받아 팔자가 피기만을 바랐지만 그런 요행수는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간첩의 신출귀몰함 때문인지 기도비닉의 신묘함 때문인지는 모릅니다. 하여지간 그런 사건들은 오직 공안 당국의 조사에서만 드러났고 신문 기사에서는 지워진 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입 다물고 귀 닫고 눈 감긴채로 살았던 시절이 1960년대, 70년대 그리고 1980년대로 끝이 났습니다. 

이제 2010년대가 됐습니다. 우리는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연탄을 때는 집도 거의 없어서 연탄가스로 죽는 사람도 없고 최저 임금이라는 것도 생겨서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도 모두 제 값을 받고 넉넉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라의 보조가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 부족한 부분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폐지를 주워 팔면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호시절입니다. 

인기 연예인의 기사가 항시 우리들의 욕망을 채워주고 때로 연예인들의 연애 기사가 우리를 대리 만족 시켜주고 있으니 우리는 모두 행복합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에는 온갖 정보가 널려있고 이제는 ‘정부에 불만이 많은 자’도 간첩으로 분류되지 않는 호시절이 왔습니다. 때 없이 넘어와서 난동을 부리던 북한군들도 이제는 없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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