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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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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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차별을 조장하는 지역교과서
김 명 신 <논설위원·옥포초 교사>

발령을 받고 2~3년쯤 지났을 때 일이었다. 아이들과 청소시간에 맡을 역할을 정하고 있었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여학생에게는 걸레질이나, 먼지털이 등의 역할을, 남학생들에게는 비질이나 운동장청소 등의 역할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여자 아이가 나에게 따져 물었다. "선생님, 저희도 걸레질 말고 다른 거 주세요. 왜 맨날 걸레질 같은 것만 주세요"

그때 내가 받았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고정된 성역할을 심어주고 있었다니, 그 이후로는 나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보기를 들면 가능하면 여학생들에게는 활동적인 역할을, 남학생들에게는 걸레질 같은 섬세한 역할을 주고 있다.

이러한 교육현장에서의 자각과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요즘 들어 교육에서의 성차별 문제가 많이 연구되고 있다. 특히 교과서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교과서내용과 삽화에서의 성차별에 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어 왔으며, 미흡하나마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지역교과서이다. 초등학교 3, 4학년 사회과 탐구 교과서는 지역에서 제작한 지역교과서로 학습을 한다. 그런데 이 지역교과서의 성차별적 내용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전교조 충북지부 여성위원회가 전국 최초로 지역교과서를 분석한 자료를 내놓았다. 충북지역 13개 시·군을 다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7개 시·군지역의 초등학교 3학년 사회과 탐구 교과서 삽화와 사진들을 분석해서 지역교과서에 담긴 남녀 차별적 교육내용들을 찾아낸 것이다.

교과서의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삽화나 사진속의 주인공도 남성이 더 많았다. 활동묘사도 남성은 직업활동을 중심으로, 가사노동과 육아, 자녀교육의 책임자는 전적으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직업 활동의 묘사에 있어서도 남성은 입법·관리직·전문직·기술직 등의 직업 주체로 여성은 서비스·판매 등 소비·가정생활 주체로 그려지고 있는 등 성차별적 교육내용들이 심각했다.

지역교과서가 이렇게 불평등하게 기술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교과서 집필진의 구성이 남성이 많기 때문이다. 집필진의 구성을 보면 남성들이 60~70% 정도 되었다. 따라서 특별한 지침이 없는 한 그들의 성역할 고정관념이 그대로 교과서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평등한 교과서 집필기준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충청북도 교육청이 성평등 교육에 의지를 가지고 집필기준과 연수를 마련했더라면, 이러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지역교과서가 성평등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교육청에서 해야 될 과제다. 그런데 교육청은 다른 업무를 맡고 있으면서 양성평등교육을 겸임하는 장학사 1명만 있을 뿐, 성평등 교육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정책을 수립할 담당자가 없다. 적어도 성평등교육을 전담하는 장학관을 두지 않고서는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성평등한 교과서는 집필진 구성을 변화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남녀의 비율을 50대50으로 맞추어야 하고 참가집필진 모두에게 교과서 집필과 관련된 성평등 연수가 실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수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이 집필기준이므로 지금 즉시 교육청은 집필기준 마련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이를 담당한 여성정책담당관을 임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여성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육에서의 성평등 문제를 지역여성운동의 주요의제로 제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할 곳은 여성단체들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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