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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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5.08.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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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예전 베버를 보았을 때 관료제(bureaucracy)라는 말이 참 생뚱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료(官僚)라는 말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데도, 그는 줄곧 그것이 좋은 양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관료제는 왕정사회를 벗어나 현대적 정치를 하기 위한 좋은 장치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관료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파워엘리트’에 해당된다는 것을. 전문가 집단에 의한 정치, 그것을 베버를 꿈꿨던 것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캄라는 책을 통해서 종교학자를 넘어선 정치학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아니, 정치도 일종의 종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어휘는 ‘인간의 평균적인 결함을 고려하더라도’라는 표현이었다. 정치는 일단 인간의 평균적인 결함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 정치는 잘 난 사람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못난 사람도 같이 가는 것이다. 인간의 이익, 욕망, 관심, 허영, 부도덕, 저능 등을 잘 끌고나가는 것이 바로 정치다. 그 반대의 영역에 속하는 인간들은 혼자 살아도 되고,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일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같은 경우는 정예소수의 행정학교를 만들어 그곳에서 배출된 관료가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전문가가 있다. 전문가가 아닌 자가 전문가인 척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행정은 전문가에 맡겨야 한다. 교수도 각자의 전문분야가 있듯이 행정도 그 자체로 전문분야다. 다만 수장은 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엉뚱할지라도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교정하고 진작시키는 역할을 해주어야 조직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하던 대로, 그냥 문제만 없게, 규정만 따지는 행정으로는 늘 그게 그 모양이기 쉽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끌고 나가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정부조직의 장을 정치인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면서 좋지 않게 여겼는데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그리하여 정치가와 전문가가 잘 어우러질 때 행정(行政)은 꽃을 피운다.

전문가가 박사이어야 하는가? 전문가도 여러 뜻이 있다. 흔히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는 것은 ‘전문의’도 포함하는 직업적 탁월함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외국사회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박사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박사는 연구 쪽이고, 전문가는 실습 쪽이기 때문에 혼재되는 것이 더 우습다. 기능인과 이론가를 엄격하게 구별하려는 서구적 전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전문의도 박사를 받으려 한다. 길이 분명 다른데도, 어영부영 길을 하나로 뭉쳐놓았다. 이러다가는 이것도 저것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도 저도 못하게 되기 쉽다.

어의적으로만 보면 박사(博士)는 ‘넓을 박’ 자니까 두루두루 잘 아는 사람이지 전문가는 아니다. 미국이 공학박사에게도 철학박사(Ph.D.)를 주는 까닭은 보편적으로 학문을 잘 적용시키라는 뜻에서다. 철학은 보편학이기 때문에.

행정도 행정전문가가 따로 있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들이 바로 전문가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료라는 말이 썩 좋게 쓰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행정만 신경 쓰지 않고 딴 데 더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관료라는 말 대신 공직자라는 말로 대신하지만, 고급관료를 고위공직자라고 바꿔 부른다고 해서 세상이 금세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들이 공무원이건, 공직자이건, 관료이건 상관없이 특정영역에서 스페셜리스트인 것을 안다. 그것은 내가 내 분야에서 전문가이듯이 남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함부로 넘볼 일이 아니다.

그대는 스페셜리스트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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