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외갓집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8.26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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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백 석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갓집은

초저녁이면 안팎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북쪽제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쨩쨩 쇳스럽게 울어 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울안 배나무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어 달고 부뚜막의 큰 솥 적은 솥을 모조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 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 외갓집에 호랭이 삼촌이 있었습니다. 재담꾼인 삼촌은 방학을 맞아 도시 조카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사랑방에 모아놓고 으스스한 귀신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망울만 또르륵 굴려대던 우리는 밤새 오줌도 참아가며 동트기를 기다렸지요. 까마득한 외갓집 추억이 설화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한 백석의 시로 되살아납니다. 읽을 수록 쫄깃합니다.

*무릿돌 : 많은 돌. 길바닥에 널린 잔돌

*쩨듯하니 : 환하게.

*재통 : 변소

*잿다리 : 재래식 변소에 걸쳐 놓은 두 개의 나무

*모랭이 : 함지 모량의 작은 목기

*넘너른히 : 이리저리 제각기 흩어서 널브러뜨려 놓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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