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의 낭만
칠석의 낭만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8.2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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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유한한 시간을 사는 생명체들에게 이별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것은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하는 감정상의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별을 슬픈 것으로 간주하고 그 중에서도 영원한 이별을 가장 비극적인 것으로 여기곤 한다. 이러한 이별을 전설로 승화하여 그것의 미학을 구축한 것이 바로 견우 직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칠석의 이별과 만남이다. 일 년 중 칠월 칠석(七夕) 단 하루 저녁만 허용되는 만남은 영원한 이별에 마주한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요, 늘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의 정을 느끼게 한다. 조선(朝鮮)의 시인이자 기생이었던 이옥봉(李玉峰)에게 칠석(七夕)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 칠석(七夕)

無窮會合豈愁思(무궁회합기수사) : 끝없이 만나니 어찌 수심 있을까
不比浮生有離別(불비부생유이별) : 덧없는 삶에 이별 있음과 견줄 수가 없도 다
天上却成朝暮會(천상각성조모회) : 하늘에서는 도리어 아침저녁 만남이었던 것이
人間漫作一年期(인간만작일년기) : 사람 세상에서는 멋대로 연례행사가 되었네

※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거늘 이별 없는 세상이 있을 수 있을까? 시인의 생각으로는 하늘 나라가 그렇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만남만 있을 뿐, 이별은 없다. 그러니 이별에 따른 근심 걱정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시인의 생각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겠지만, 숱한 이별을 겪는 사람 세상에서는 아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 세상은 언젠간 죽고 마는 덧없는 삶에 늘 이별의 고통마저 더해져 있으니, 영생불사(永生不死)에 이별이 없는 하늘나라와는 견줄 바가 못 될 것이다. 시인도 사람이기에 이별의 고통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시인은 날이면 날마다 뭇 남성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기생 신분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시인이 이별은 없고 만남만 있는 세상을 갈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마침 날이 음력 7월7일 칠석(七夕)이었던지라, 자연스레 시인은 칠석(七夕) 하면 연상되는 견우(牽牛) 직녀(織女)를 떠올렸다. 견우와 직녀는 본디 사람 세상과 하늘나라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지만, 직녀가 우연한 기회에 사람 세상에 내려왔을 때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오순도순 행복한 삶을 함께 꾸려나갔던 사이였다. 그러나 고향이 그리워진 직녀가 하늘나라로 돌아가면서 이들의 이별은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헤어진 견우(牽牛) 직녀(織女)가 일 년에 한번 만날 수 있는 날이 바로 칠석(七夕)이었으니, 이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시인에게 칠석(七夕)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푸념 아닌 푸념을 내뱉고 말았으니, 하늘나라 같으면 아침저녁으로 만날 것을 누가 멋대로 일 년에 단 한번 만나게 만들었냐고 말이다.

사람의 일생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돌연한 이별 앞에서 사람들은 차라리 만남이 없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칠월 칠석(七夕) 견우직녀의 전설을 떠올리며 이별의 회한을 잠시나마 달래곤 하니, 칠석(七夕)은 이별의 아픔을 아름다운 낭만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의날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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