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엇박자
한밤중에 엇박자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5.08.24 18: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수필가>

알 수 없는 출처의 번호다. 거절버튼을 터치한다. 또다시 울린다. 거침없이 거절버튼을 터치한다. 상업성 전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다 보니 입력되지 않은 발신은 습관적으로 거절한다. 이어 문자 메시지가 울린다. 택배란다. 눈으로 문자를 읽어 내려가면서 머릿속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빠르게 돌아간다. 받을 택배가 없으므로 반가움보다는 불신이 앞서는 내 모습이 씁쓸하기도 하다. 

제주도 옥돔, 택배상자를 받아들고 기억을 한참 더듬어 보아도 택배 발신자의 이름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개봉을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을 무렵 순간 번쩍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폭염이 연속이던 나날,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리다 무심천으로 운동을 나선다.

경쾌한 음악이 이어폰을 따라 흘러들어오고 힘찬 파워워킹으로 땀방울들은 허리춤에 쉬어간다. 반환지점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발끝에 묵직한 것이 채이면서 불빛이 반짝인다. 핸드폰이었다. 본능일까 행여나 누구 볼까 나도 모르게 주의를 쓱 돌아본다. 괜스레 꿍꽝거리는 가슴을 끌어안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케이스를 열어본다.

패턴으로 잠겨진 핸드폰은 도무지 몇 번을 그려보아도 열리지 않는다. 그때부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남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님에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반환점에서 핸드폰을 주웠으니 돌아갈 길이 어둠보다 더 깜깜해진다. 엇박자로 울리는 방망이질은 멈추지 않고 가슴에 먹구름이 내려앉는다. 급기야 아들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지원요청을 한다. 단숨에 차를 몰고 온 아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어머니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니 다리가 떨리고 힘이 빠지는 겁니다.” 요즘은 핸드폰에 위치추적 기능이 있으므로 다 찾아온단다. 그 말끝에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불안해진다. 차 안에서 케이스를 열자 그때서야 분실자 명함과 신분증이 눈에 들어온다. 청주대학교에 근무하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명함번호로 아무리 연락을 해도 허공에 메아리칠 뿐 답이 없다. 손아귀에 움켜진 핸드폰 역시 숨죽이듯 벨 한번 울리지 않는다. 

아무런 연락이 없자 마음이 바쁘다. 코앞이 집이건만 왜 이리 멀기만 한지. 

결국, 명함에 있는 메일주소로 메일을 보내던 중 ‘아내’라고 입력된 발신음이 울린다. 다급한 마음에 상대방 말을 듣지도 않고 변명이라도 하듯 핸드폰을 주워온 위치와 왜 소지를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에 바쁜 내 모습을 본다. 내심 도독 아닌 도둑으로 의심을 살까 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게다.

한걸음에 달려온 사내 역시 겸연쩍은 모습으로 잃어버린 사연을 변명하듯 쏟아낸다.

그날 밤, 왠지 모를 묘한 기분에, 그리고 씁쓸하고 공허한 마음에 좋은 일을 하고도 허전하다.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 쓰지 마라’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남에게 쓸데없이 오해받기 쉬운 짓은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리 삭막한 세상이 되었는지.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예전에 대문을 열어놓고 서로 오가던 이웃들, 정자에 둘러앉아 더위를 식히던 그때 그 따스한 풍경이 그려지는 요즘, 옥돔은 정이었다. 

그랬다. 웃고 우는 정, 그날 밤 내 가슴엔 아름다운 별 하나가 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