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구의 동화속풍경
김경구의 동화속풍경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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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어머니는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면 항상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1년 전 시골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간 희숙이 누나 때문입니다.

누나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마치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마침 서울에 먼 친척뻘인 아저씨가 버스 안내양으로 취직을 시켜주셨습니다.

희숙이 누나는 꼬박꼬박 월급을 시골집으로 보냈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누나 앞으로 통장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빤한 시골살림 꾸려가기도 힘들었고, 창섭이가 중학교 1학년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저축하기는 힘들기만 했지요.

창섭이는 읍내 중학교까지 걸어서 오고 갔지만 늦은 시간은 막차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가끔 창섭이가 타고 오는 버스의 안내양 누나는 많이 피곤해 보였죠. 손님이 없으면 의자에 앉아 기사 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졸다가 유리창에 몇 번이곤 머리를 부딪치곤 했습니다.

창섭이는 영어 단어장을 손바닥에 놓고 외우다 안내양 누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안내양 누나는 눈을 비비며 살짝 웃습니다. 그러자 창섭이는 희숙이 누나가 떠올랐지요. 아마도 이 시간 버스에서 하루의 피곤을, 아니 삶의 고단함을 애써 참으며 버스 문에 기대였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 아버지 생신날 왔을 때도 퉁퉁 부은 다리를 어머니는 밤새 주물러 주었지요. 창섭이는 곤하게 잠든 희숙이 누나와 불빛에 반짝이던 어머니의 눈물이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시골 구판장 앞에 버스가 멈췄습니다. 창섭이는 안내양 누나에게 호주머니에 있던 껌 하나를 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하고 내립니다. 누나는 "고맙다, 잘 씹을게"하면서 버스 문을 탕탕 치며 "오라이~ 오라잇~~"외칩니다.

어느새 밤하늘에 별이 한 무더기 떴지요. 창섭이를 내려 놓은 버스는 이미 보이지 않고 덜컹덜컹 언덕을 넘어 가는 소리만 아련하게 들리다 이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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