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야생 (1)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 (1)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5.08.2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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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반영호 <시인>

대추나무 잎 사이로 찬란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고 온갖 새들이 모여들어 합창을 합니다. 방울이 굴러가듯 고운소리를 내는가하면 어떤 새는 마치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기의 뜻도 의미도 없는 말처럼 종알거리고, 우렁차게 외치기도 하며 숨이 넘어가듯 앙알 대기도 하지요. 먼동이 트는 아침시간 분주한 우리 집 풍경입니다. 잉꼬.문조.금화조.카나리아.십자매, 우리집에서 가장 일찍 기상하는 애들인데 어느 하나 이쁘지 않은 것들이 없는 새들로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관상조들이지요. 추측컨대 새들의 본향은 열대의 어느 깊은 정글이겠지요. 우리 집이 정글 속은 아닙니다. 숲속도 아니지요. 그저 큰, 아주 큰 대추나무가 마당거지반을 덮고 있으니 마당이 작은 탓이긴 하지만 숲속의 집인 양 착각하는 것이죠. 대추나무 잎이 하늘을 가린 마당을 들어서면 제법 숲처럼 그럴싸하여 동네의 온갖 잡새들이 다 꼬입니다. 동네 새들이 모이는 이유가 사실은 울창한 대추나무 때문은 아니지요. 먹이입니다. 밤새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몰려오는 것입니다. 모이를 주느냐고요, 아닙니다. 동네 잡새들에게 좁쌀을 나눠줄 만큼 내 심성이 넉넉하지는 않거든요

놈들이 먹어치우는 사료도 수월찮아서 매 파스마다 시장을 가야합니다. 아무리 다섯 쌍이라 해도 솔직히 요 작은 것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겠습니까. 절반은 흘리는 거지요. 닭을 길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버르집는 습성이 있는 것처럼 새들도 비슷하죠. 또 모이를 그냥 먹는 게 아니라 껍질을 까먹기 때문에 반 손실을 내는 거예요. 그들이 흘린 사료를 주워 먹기 위해 야생 잡새들이 떼거리로 몰려오는 겁니다. 많은 새가 오는 만큼 종류도 다양하죠. 참새 딱새 굴뚝새 솔새 박새 등 이름을 모르는 새들도 여럿 있어요. 그렇다고 야생 새들은 대추나무에 둥지를 틀고 터전을 잡지는 않아 관상조와 잡새들은 서로 어울리지 못한 답니다. 우리 집 관상조들은 습성이 고약하여 수시로 둥지를 쪼아댑니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면 집중적으로 공격해 둥지를 망가뜨리고 말지요. 그 행위는 둥지를 망가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기 위해 둥지 안에 보드라운 거푸집을 깔려는 본능적 행동입니다

이럴 땐 마른풀이나 거푸집을 새장에 넣어줍니다. 그러면 열심히 물어 나르는데 꼭 수컷이 수고를 합니다. 수컷이 부지런히 일하는 동안 암컷은 거들떠도 안보다가 재료가 운반되면 둥지 안에 들어가 정리를 합니다. 길거나 거친 거푸집은 오히려 밖으로 내버리기도 하지요. 수컷은 암컷이 내다버린 거푸집을 부리로 잘게 자르거나 부드럽게 만들어 다시 둥지 안으로 들입니다. 둥지단장을 하는 동안 수컷은 그가 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울어대며 춤을 춥니다. 구애를 하는 것인데 똑 같은 소리 똑같은 동작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답니다. 짝짓기입니다. 

새들의 이런 광경을 보노라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꼭 같습니다. 태어나 성장을 하고 짝을 만나 보금자리를 만들고 살림을 차립니다. 남편은 바깥일을 하고 아내는 집안 살림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살림하는 것이 이제는 옛말이지요. 맞벌이의 보편화는 세계적 추세입니다. 맞벌이의 증가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여권의 신장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구요. 맞벌이는 한편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직장 근무 및 가사의 이중 부담,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 감소와 가정 붕괴, 불필요한 가계지출의 증가와 과소비 등의 역기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족 내에서는 물론 전체 사회에서의 성간 불평등을 경감시키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맞벌이가구의 여성이 져야 하는 가사 부담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제도와 의식의 변화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집 새들도 개혁을 할 수 있을는지. 함께 둥지를 짓고 함께 새끼를 키워갈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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