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성팔현, 청주의 여덟 어진 선비
낭성팔현, 청주의 여덟 어진 선비
  • 박상일 <역사학박사, 청주대박물관>
  • 승인 2015.08.20 18: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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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박상일 <역사학박사, 청주대박물관>

고려 태조 왕건은 청주는 땅이 기름지고 호걸이 많다고 하여 ‘인다호걸(人多豪傑)’이라 표현하였다. 이숭인은 청주는 실로 동남쪽의 집합지로서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서 사업이 번잡하다고 했고, 노숙동은 청주는 충청도의 본영이요 땅이 넓고 인구가 조밀하다 하였다. 이영구는 구역이 넓고 인재의 많음이 실로 다른 고을에 비할 바가 아니라 하여 ‘경양요광(境壤遼曠)’이라 했다.

인다호걸의 고을답게 청주에는 낭성팔현(琅城八賢)이 살았다. 충청도를 양반의 고장이라 말한다. 양반이 비판 받는 요즘 세상이지만 충청도 양반이라 함은 올곧은 성품으로 지조를 갖고 학문에 힘쓰고 안빈낙도했던 선비를 말한다. 낭성은 청주의 별칭으로 조강의 『모계집』에 청주에 살았던 여덟 분의 어진 선비를 일컬어 낭성팔현으로 소개하였다.

낭성팔현이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청주의 대표적 인물이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이들의 생애와 인맥을 살펴보는 것은 청주의 선비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모계집』에 의하면 고을에는 이름난 선비와 큰 덕이 있는 이가 전후로 계속 배출되었으니 송재 한충, 강수 박훈, 규암 송인수와 모계 조강, 화곡 정사호, 서계 이득윤, 이유당 이덕수, 만주 홍석기 같은 분들이라고 기록했다. 한충과 박훈은 중종 때의 기묘명현이고, 송인수는 명종 때의 을사명현이며, 나머지는 선조에서 현종 대에 활동한 인물들이다. 이들에 대한 청주사림의 추앙은 신항서원의 창건(1570년)으로 이어졌다.

낭성팔현은 청주의 오랜 세가 가문 출신이거나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가 청주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낙향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뿌리를 내리게 한 명망가이다. 그리고 이들은 청주에서 학문적 교류와 혼인 등으로 상호 인연을 맺으며 인맥을 형성하고 청주사림의 중심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낭성팔현 상호간의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우선 한충과 박훈은 함께 기묘사화의 피해자란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두 사람은 한충의 『송재집』에 박훈을 천거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개인적 친분관계도 짐작할 수 있다. 조강은 송인수와 사제지간이며 박훈의 손자인 박사현은 그의 문인이면서 사위이다. 이덕수는 이득윤의 문인이며 홍석기는 이덕수의 누이의 손자이다.

신항서원의 창건은 16세기에 청주사림이 형성되었고 낭성팔현이 그 구심점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한충 박훈 송인수 이득윤은 배향인물이며, 조강은 서원 창건자의 일인으로 원장을 지냈다. 이득윤과 이덕수도 원장을 지냈으며 홍석기는 원장을 지낸 바 있는 홍순각의 손자로서 신항서원 중수상량문을 짓기도 하였다. 정사호는 원장을 지낸 채무이의 조카사위이다.

신항서원 외에도 청주에는 낭성팔현 관련유적이 많다. 박훈이 낙향하여 살던 오송읍 연제리 집터의 모과나무는 천연기념물 제522호이고,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제작한 눌재강수유고목판과 신도비,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암자인 수천암은 각각 충북도 지정문화재이다. 문의면 남계리에 있는 송인수의 묘소와 신도비 역시 도지정문화재이고 그가 살던 화당리에는 삼현려비가 있다. 조강의 고향마을인 강내면 연정리에는 그를 모신 효충사가 있고 송천서원에도 배향되었다. 이득윤을 배향한 서원은 미원 옥화서원이고 묘소는 인경산에 있다. 이덕수의 묘소와 신도비는 내수읍 묵방리에 있는데 묘역이 도지정문화재이고, 국계서원에도 배향되었다. 홍석기는 고향인 미원면 수산리에 묘소와 신도비, 효자각이 있다. 다만 오송에서 태어난 한충의 묘소와 그를 배향한 봉계서원은 모두 지금의 세종시에 있다. 청주의 역사인물기행을 통하여 낭성팔현의 관련유적을 답사하고 선양하는 사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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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암 2015-08-22 11:34:27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조상을 빛나게하는 역사학박사 박상일님.,돌다리에서 살아던 박노혁입니다, 좋은 글과 살아있는 역사공부 많이합니다, 계속해서 역사 칼럼 부탁합니다 "승자의 기록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역사로 남고, 패자의 기록은 달빛에 바래져 신화가 된다." 소설가 글귀가 생각이 나네요, 박상일님 칼럼이 충청에서 아름다운 역사와 멋진 신화을 만드시길 기대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