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인생시계
고장 난 인생시계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5.08.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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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바야흐로 장수시대다.

물질풍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있다.

의식주 환경이 좋아져 모두들 잘 입고, 잘 먹고, 잘 씻고, 잘 잔다. 

거기다가 의료보험의 발달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고, 조깅과 등산은 물론 저마다 생활체육 하나씩은 하고 있으니 노화가 더디게 진행된다.

현대의술도 말기 암이 아니면 웬만한 병은 다 고쳐내고, 노인복지시설과 요양시설들도 장수에 한몫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30년 전만해도 회갑을 맞으면 동네잔치를 벌였다. 60세 까지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 회갑은 장수의 상징이자 축복이었다.

필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못난 불효자다. 

회갑잔치 날 회갑을 맞은 부모를 등에 업고 장내를 도는 친구를 보면 너무나 부럽고 서러워 화장실에 들어가 펑펑 울기도 했다.

그런 회갑연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칠순도 건너뛰고 팔순잔치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60대는 경로당에 명함도 못 내민다. 일할 여력은 있으나 딱히 할 일이 없는 어정쩡한 나이라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오승근의 노래를 부르며 자조하고 산다. 

요즘 공자의 인생시계가 흔들리고 있다. 아니 오작동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의 위정(爲政)편에서 인생을 6단계로 나누어 설파했다.

물론 성현의 인생관이라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임이 분명하지만 선인들은 그의 시계바늘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첫째, 십유오이지우학(十有五而志于學)이라 하여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세웠다. (인생의 목표를 새겼다)

둘째,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 하여 서른에 독립했다. (예를 알았다)

셋째,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 하여 마흔이 되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공이 생긴다. (비로소 철이 들었다)

넷째,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라 하여 나이 쉰이 되어서야 천성과 천리를 깨우쳤다. (세상물정을 알았다)

다섯째,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이라 하여 예순이 되니 천지만물의 모든 소리를 들어도 아무 거리낌이 없다. (웬만한 비난과 욕질에도 감정조절이 가능해졌다)

여섯째,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 하여 일흔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

(진정한 자유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공자는 이처럼 15세부터 70세 까지 6단계로 나누어 인생의 시계추를 달았다. 공자가 72세에 졸했으므로 그의 인생시계는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중국의 대시인 두보(杜甫)도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했으니 70세가 당시 수명의 로망이었다.

물론 백수를 누린 사람도 없진 않았다.

그래서 구순을 바라본다는 81세를 가리켜 망구(望九)라 했고, 88세를 뜻하는 미수(米壽)와 백세를 바라본다는 91세를 가리켜 망백(望百)이라 했다.

각설하고, 이제 인생시간표를 재설계할 때가 되었다. 

시대상황도 변했고, 인간의 수명도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60이 넘었는데도 이순은커녕 불혹도 지천명도 하지 못하는 범부들이 태반이다.

그러므로 저마다 100세 시대에 걸맞은 21세기형 인생로드맵을 장착해야 한다. 

공자가 환생해 재설계를 하기 전에 90세를 평균수명 삼아 인생 3모작으로 일단 구분한다.

30세 까지는 성장하며 공부해 내공을 키우는 충전의 1모작으로, 60세 까지 30여 년은 생활전선에서 자신의 능력과 내공을 발휘하는 방전의 2모작으로, 나머지 30여 년은 삶을 관조하고 힐링하는 3모작이 된다.

어떻게 충전하고, 어떻게 방전하고, 어떻게 관조하고 힐링하느냐는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한 번뿐인 삶, 팔십을 살던 백 살을 살던 인생은 유한하다.

지금 그대의 인생시계는 몇 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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